[7월 31일 편지] 이게 무슨 조화? 공연장 조명 때문에 쇼를 다 바꿔야 한다니…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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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두번의 리허설 중 첫번째 리허설 날이다. 처음 가보는 공연장…. 그리고 그 공연장 중에 제일 큰 메인극장. 들어가자마자 우리를 반겨주는 사람이 있었다. 작년에 우리와 같이 일을 했던 스텝 중 한 명이다. 올해도 스텝으로 반갑게 맞아줬다. 공연장 로비는 변함없이 분주하며 바빴다. 아직 공사중이었이서다. 뭐 작년에도 그랬지만.

포스터는 우리 손으로 붙일 수가 없다. 스텝들이 알아서 붙혀준다. 지난해 써먹은 방법을 다시 썼다. 곧바로 음료수를 사다가 하나하나 주면서 '코리안 스타일'이라며 우리를 기억해달라고 말했다. 음료수 하나에 정말로 너무도 기뻐하는 모습이 우리에겐 좀 색달랐다. 스텝들과 인사를 나누고 우리가 공연하게 될 메인극장에 발을 들였다. 작년엔 이렇게 크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무대에 서보니 굉장히 컸다. 좌석도 많았고, 무대도 생각보다 넓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4시간. 소품과 현수막을 거는 작업이 시급했다. 수원이는 만물박사이다. 정말로 어떤 것이든 못해내는 게 없는 친구다. 혼자 현수막을 와이어줄에 달아서 길이를 맞춘 다음 정확하게 달았다. 이어서 엔지니어들과의 미팅. 공연에서 쓸 조명을 설정했다. 외국 기술감독이 와서 하나하나 켜보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조명으로 설정을 맞춰주고 있었다. 외국 기술감독은 "옹알스가 처음 리허설하는 팀"이라고 말했다. 주최측의 배려에 고마움이 밀려왔다.

우열곡절 끝에 조명을 맞춰놓고 이번엔 마이크를 테스트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작년엔 안그랬는데 올해는 아예 마이크 볼륨에 LOCK을 걸어놓았다. 일정 수준 이상 볼륨을 높이지 못하도록 해놓은 것이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비트박스는 어느정도 볼륨을 켜놔야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는 기술인데 너무 작았다. 비트박스 뿐 아니라 각종 음향소리를 내려면 볼륨이 작아선 안된다. 한국에서 공연할 때 조정된 볼륨을 7로 치면 여긴 3밖에 안되는 볼륨이었다. 최선을 다해서 쎄게 말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현수막·조명·마이크 테스트만 하는데 무려 3시간이 흘렀다.

드디어 리허설. 첫 등장장면부터 슬슬 시작하는데, 이건 또 무슨 조화란 말인가? 우리 쇼 중에 완전 암전을 시켜놓고 형광가면과 형광물질로 하는 마리오네트 쇼가 있다. 그런데 리허설을 해보니 완전 암전이 안된다. 외국도 우리나라처럼 공연장에 비상구가 있지만, 메인극장이어서인지 좀 심할 정도로 많다. 우리나라 공연장엔 평균 2~3정도 있다면 이 메인극장엔 비상구 불빛만 10개가 넘는다. 이러니 완전 암전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단 그대로 리허설을 강행했다. 근데 지켜보던 스텝들이 우리가 다 보인다고 한다. 조금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사람이 나오는 것은 물론 자세히 보면 얼굴 표정까지 보일 것 같다고 했다. 절대로 이러면 쇼를 할 수가 없다. 이 퍼포먼스 하나를 위해 돈도 많이 썼고, 시간도 제일 많이 투자를 했는데…. 다시 해보고, 객석과 멀리 떨어지도록 뒤로 좀 물러나서 해보고, 일부러 늦게 나와보기도 했지만 결국엔 다 보인단다.

허망하게 4시간의 리허설 시간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연습을 해보지도 못하고 짐을 꾸려 대기실로 와야 했다. 서로들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지난해보다 더 심해진 규정과 더 심해진 규칙들. 그 친구들로썬 어쩔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로선 정말 큰일이었다. 이걸 못하면 쇼가 어지럽게 흐트러진다. 처음부터 그 쇼로 시작을 해서 쭉 가는 식이었는데 지금와서 못하게 되니 다들 망연자실한 상태로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정신을 좀 차리고 한 명씩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들 짜증이 나 있는 상태여서인지 의견이 맞지 않았다. 그러다 얼마 뒤 결국 결정을 내렸다. 그냥 안하기로…. 너무 아쉬운 결정이지만 어설프게 보여주는것 보단 아예 안 보여주는 것이 좋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솔직히 너무 짜증이 났다. 이렇게 되면 작년과 다시 비슷하게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들 잘 될 것으로 믿고 왔는데 현장에서 이렇게 방해요소가 많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어쩔수 없이 우리의 쇼를 전부 다 바꾸고 최대한 연습한데로 살려가면서 재미있게 가기로 정했다. 내일 모레 또 한번의 리허설이자 마지막 리허설이 남아있다. 갑자기 할 일이 너무 많아졌다. 소품도 다시 만들어야 하고, 스토리도 바꿔야 하고, 연습도 다시 해야 하고, 음악도 다시 만들어야 하고, 조명도 그날 가서 다시 만져야한다. 숨차다. 이 모든걸 내일 단 하루만에 해야 한다. 머리가

글·옹알스 최기섭, 정리·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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