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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코미디’ 재난 경보 시스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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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전영선
사회부문 기자

보냈지만 받은 사람은 없다던 우면산 ‘산사태 발생 위험 예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의 행방이 밝혀졌다. 문자는 서초구청 퇴직 공무원들에게 전달된 것으로 밝혀졌다. 국민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 코미디 같은 위험경보 시스템을 운영하는 나라가 코리아다. 담당자가 바뀌면 산림청의 산사태 위험지 관리 시스템에 새 번호를 등록해야 한다. 하지만 서초구청은 이 작업을 하지 않았다. 산림청의 예보 문자메시지는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해당 지역 담당자(공무원)에게 발송된다. 폭우가 오던 지난달 26, 27일 산림청은 4차례나 시스템에 등록된 서초구 담당자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서초구청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문자를 발송하고 할 일 다한 것처럼 행동하는 산림청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문자를 보낸 건 면죄부가 아니다. 더 적극적으로 대처했다면 이번 참사를 막거나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런 허술한 시스템으로는 재난을 예방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박충화 대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재난예보 정보를 담당 공무원의 휴대전화로만 전달하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휴대전화는 잃어버릴 수 있고 설령 문자가 전달되더라도 놓칠 위험이 크다.

 한국의 국가재난 관리체계는 재난 발생 후 대응과 복구에 초점을 둔다. 재난 발생 시 행정안전부 장관이 장을 맡아 가동하는 중앙안전대책본부 등 각종 재난 관련 조직은 평상시엔 활동하지 않는다. 예방에 취약할 수밖에 없 다. 상시 조직이 없는 만큼 위험을 감지하고도 전달에 소홀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는 산림청이 서울시와 서초구에 연락을 취한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산림청이 지난달 27일 우면산 산사태 발생 이후 서울시에 보낸 공문엔 ‘산사태 위험지역 주민은 대피해야 한다’는 내용 한 줄이 전부다. 어느 지역이 위험한지 정확한 분석은 없다. 이런 공문은 면피용밖에 안 된다. 다시 비가 온다. 우면산과 같은 재앙이 더 이상 없다는 보장은 없다. 전국 산사태 위험지역에 대한 실태 조사와 철저한 맞춤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영선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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