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현욱의 과학 산책

뇌파로 기계 조종하는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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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조현욱
객원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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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장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앞차가 갑자기 속도를 늦춘다. 나도 급히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하지만 발이 움직이는 속도는 내 생각만큼 빠르지 않다. 이제 추돌사고가 일어날 순간이다. 하지만 내 차가 내 생각을 읽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뇌파를 읽어서 자동으로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이것은 과학소설이 아니다. 독일 베를린 공대의 연구팀이 신경공학 저널 최근호에 발표한 실험 결과다. 연구팀은 18명의 참가자들에게 뇌 속에서 일어나는 전기활동, 즉 뇌파를 측정하는 센서를 머리에 부착한 뒤 운전 모의실험을 하게 했다. 참가자들은 앞차와 20m 거리를 유지하면서 시속 100㎞로 운행하라는 지침을 받았다. 앞차는 수시로 급제동을 되풀이했다. 뇌파 측정(EEG) 시스템은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겠다는 의도를 가졌음을 실제로 브레이크를 밟기 0.13초 전에 확인해주었다. 이에 따라 제동거리를 3.66m 줄일 수 있다는 것도 확인됐다. 연구팀의 컴퓨터 공학자 스테판 하우프는 “일단 뇌에서 상황을 인식하고 행동을 하겠다는 의도가 형성된 뒤에 근육이 실제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행동 의도가 형성되는 시점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보다 더욱 정교한 장치도 머지않아 실용화될 예정이라고 지난달 29일 사이언스데일리가 보도했다.

그 선두에 서 있는 것은 미국 메릴랜드 대학 콘트레라스비달 박사의 연구팀이 개발 중인 뇌파 측정 모자와 뇌파 해석 소프트웨어다. 연구팀은 러닝머신에서 걷고 있는 사람의 뇌파를 읽어 이를 그 사람의 발목·무릎·엉덩이 관절의 3차원 움직임에 어느 정도 대응시키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이전의 연구에서 같은 방식으로 손의 3차원 동작을 재현했으며 뇌파를 읽어 컴퓨터 커서를 움직이게 하는 데도 성공했다. 콘트라레스비달 박사는 “커서를 조작하려면 특정한 생각을 떠올려 특정한 뇌파가 측정되도록 하는 훈련이 필요하지만 이는 단 한 차례, 40분간의 훈련으로 족했다”고 말했다. 그는 “신체마비·뇌졸중·부상 등으로 행동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생각만으로 인공관절이나 전동휠체어, 심지어 디지털 캐릭터인 아바타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장치를 몇 년 내에 개발, 실용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기까지는 기쁜 소식이다. 이 같은 장치가 무언가를 움직이겠다는 의도를 읽어내는 수준에 그친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만일 머릿속의 생각까지 뇌파를 통해 읽을 수 있게 된다면 그 결과는 끔찍할 것이다.

조현욱 객원과학전문기자·코메디닷컴 콘텐츠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