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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에게 친근하지 않은 나라

중앙일보

입력

대한모유수유의학회장, 관동의대 소아청소년과 교수 신손문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출산율을 보이는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자고 온 나라가 걱정을 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어렵게 태어나는 한 명 한 명의 아기들을 제대로 보살피려는 노력은 충분하지 않은 듯하다.

세계보건기구는 불필요하고 무분별한 조제분유의 사용을 방지하고 모유수유를 지켜주기 위해 1981년 총회에서 모유대체품의 판매에 관한 국제 규약을 제정하였다. 더불어 유니세프와 함께 아기를 출산하는 병원에서부터 모유수유를 하기에 좋은 환경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하여 모유수유를 권장하고 이를 실천하고 있는 병원을 ‘아기에게 친근한 병원’으로 지정하여 격려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적인 움직임과 모유수유를 권장하는 사회단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아직도 모유수유를 하기에 어려움이 많다. 지하철에서 젖을 먹이는 어머니를 비난한 청년들의 기사가 세간에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일반인이 모유수유에 대해 너무 관심이 없고 모른다는 증거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모유수유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국제적으로 모유수유를 지키고 권장하며 지원하기 위하여 매년 8월 첫 일 주일간을 세계모유수유주간으로 지정하여 모유수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모유수유를 도울 수 있는 분위기 조성에 힘쓰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해마다 이때가 되면 각 단체들이 앞 다투어 여러 가지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고 일반인들에 대한 교육, 홍보 활동을 펼치고 있으나 정부 차원의 움직임은 매우 소극적이다. 모유권장 활동을 하는 단체의 행사에 관련 부처가 후원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출산을 앞둔 예비 어머니들에게 모유수유에 대해 물어 보면 모유를 먹이지 않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출산 후 몇 달이 지나면 젖 먹이는 동안의 여러 가지 어려움이나 직장 생활 등의 이유로 모유수유를 중단하는 어머니들이 너무나 많다. 이것은 우리가 어머니들을 도와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출산 후부터 아기를 같은 방에 데리고 지내며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며, 어머니가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이 무엇보다 고귀하고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모유수유에 대하여 정규 교육과정에서부터 청소년에게 교육시켜야 한다. 산모들이 출산 후에 모유수유를 잘 할 수 있도록 병원이나 산후조리원의 환경을 개선하고 모자동실을 적극적으로 시행하도록 하여야 한다.

모유를 먹이면 어머니와 아기의 정서적인 유대감을 증진시켜 주는 장점이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아이에게 중이염이나 장염 같은 급성 질환뿐만 아니라 암이나 알레르기 질환과 같은 만성적인 질병의 발생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 또한 젖을 먹인 여성들은 유방암이나 난소암의 발생이 감소하는 효과가 있어 이로 인한 의료비 절감으로 이어져 건강보험 재정을 도와 줄 수 있다. 분유를 사는 데 드는 직접 비용에다가 자녀나 본인의 질병으로 인한 노동력의 손실까지 감안한다면 모유수유를 증진시키는 것은 의학적인 면에서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도 엄청난 이득을 얻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지출비용에서 추계하여 볼 때에 우리나라 모유수유율이 15%만 올라간다고 하면 분유값을 포함해서 연간 2-4천억 원의 경제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모든 아기들에게 필수예방접종을 무료로 해 주고도 남을 돈이다.

경제적인 관점이 아니더라도 미래의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후세들의 건강을 지켜 주는 일에 정부는 물론이고, 사회 전체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모유를 먹이든 분유를 먹이든 그것은 아기 어머니들의 개인적인 선택 사항이라고 생각하는 한 우리나라는 아기에게 친근하지 않은 나라일 수밖에 없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는 아기 한 명을 더 낳게 하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태어나는 아기들을 건강하게 키우려는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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