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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중국언론 … 공산당 ‘고속철 보도지침’에 저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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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돈 될 것 없나” 금속탐지기 든 중국 주민들 중국 원저우 고속열차 사고가 발생한 지 엿새가 지난 7월 29일 주민들이 사고 현장에서 금속탐지기를 들고 돈이 될 만한 유류품을 찾고 있다. 전날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사고현장을 찾아 이번 사고와 관련해 부패에 연루된 사람들을 엄벌하겠다고 밝혔다. [원저우 AP=연합뉴스]


홍콩 언론인들이 원저우(溫州) 고속철 사고와 관련해 중국 언론에 내린 공산당의 보도지침에 정면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영자지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 는 31일 “홍콩기자협회가 공산당의 고속철 사고 축소 보도를 지시하는 보도지침에 대해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고 전했다. 기자협회는 성명에서 공산당 중앙선전부는 보도 통제를 철회하고 기자들에게 보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자협회는 “우리는 홍콩으로 연결될 대륙의 고속철에서 이 같은 참사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홍콩과 외국 독자들에게 진실을 알릴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1997년 7월 일국양제 실시 이래 적잖이 중국 당국의 간섭과 통제를 받아 온 홍콩 언론계에서 공산당 최고기관인 중앙선전부의 지침을 정면 부정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원저우 고속철 참사 보도를 비중있게 다루고 있는 남방도시보의 인터넷판 특집코너.

 중앙선전부는 지난달 29일 “철도사고 이후 중국 내외 여론 정서가 복잡해지고 있다. 신문·잡지·뉴스사이트 등 각 매체는 차분하게 사건 보도 해야 한다”고 보도지침을 내렸었다.

 홍콩 언론뿐 아니다. 보도지침이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본토 언론은 여전히 관련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경제전문지 경제관찰보(經濟觀察報)와 중국경영보(中國經營報)·신쾌보(新快報)·남방도시보(南方都市報) 등은 특집판을 내고 철도부를 해부하는 기사를 실었다.

 그동안 중앙선전부와 정부 당국에 길들여져 왔던 중국 언론들이 고속철 참사를 계기로 제 목소리를 내고 있어 주목된다. 부패와 특권의 철옹성으로 여겨졌던 철도부의 전횡이 사건의 주요인으로 부상하자 언론의 견제를 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라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원자바오 총리

 앞서 중국 관영 중앙방송(CC-TV)의 한 기자는 현장을 찾은 원자바오(溫家寶·온가보) 총리 면전에서 “참사 며칠 만에 사고현장을 치운다면 조사 결과의 투명성을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나”라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를 통해 사건 관련 소식이 전파되자 보도 통제도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사고 당일인 지난달 23일 중국의 방송사들은 고속철 사고 소식을 제대로 전하지 않았다. 웨이보에 실시간으로 사고 소식이 전해지고 관련 글이 2600만 개나 올라오는 동안 중국의 선전매체들은 관변 입장만 실었을 뿐이었다.

홍콩=정용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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