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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팸문자 한 통 때문에 … 인터넷 도박 일당 딱 걸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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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올해 4월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의 한 검사에게 한 통의 문자메시지가 날아왔다. 친구가 포워딩한 문자에는 ‘kor8000.com…똥말 레이스, 신협-박XX 131-013-611-XXXX’라고 적혀 있었다. 암호문 같지만 누가 봐도 도박 사이트를 선전하는 스팸 문자인 걸 금세 알 수 있었다. 검사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도대체 누가, 왜 이런 메시지들을 지속적으로 보내는 것일까. 그가 도박 사이트 주소로 직접 접속했더니 무제한 베팅, 고액배당 등을 미끼로 일반인을 유혹하는 불법 경마도박 사이트였다. 강력부는 팀을 구성해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도박 사이트의 서버가 해외에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수사는 난관에 부딪혔다.

 이에 수사팀은 도메인(인터넷 주소) 등록업체를 압수수색하고, 운영자의 인터넷프로토콜(IP) 위치를 추적했다. 사람을 추적하는 대신 수천 개의 통화 내역과 계좌 내역 등의 자료를 분석해 돈의 흐름을 좇는 접근법을 택했다. 이 과정에서 디지털 정보분석시스템인 ‘I2시스템’을 적극 활용했다. 통화 내역과 계좌 내역을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통해 시각화, 돈이 흘러간 거점을 추적했다. 이 과정에서 사이트 운영자들은 수십 개의 대포폰과 대포계좌를 이용하고 사이트 도메인도 일주일 간격으로 바꾸는 수법으로 수사망을 피해갔다. 검찰은 3개월여 수사 끝에 실제 운영자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스팸 메시지 한 통을 끈질기게 추적해 올린 성과는 컸다. 지난해 1월부터 불과 4개월 동안 한국마사회의 실제 경주에 사이버머니를 걸게 하는 방식으로 이들이 판매한 사설 마권이 77억원어치에 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는 한국마사회법 위반 등 혐의로 사이트 운영자 윤모(42)씨와 사설마권 판매업자 김모(50)씨 등 5명을 구속 기소하고 마권 판매·구매 등 도박에 가담한 14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31일 밝혔다. 또 달아난 폭력조직 부두목 정모씨 등 6명을 기소중지(수배)했다. 정씨는 사이트 설립 및 운영 자금을 댄 주범 격이라고 검찰은 밝혔다.

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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