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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희생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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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희생(犧牲)은 제사 때 제물로 바치는 동물을 뜻한다. 『주례(周禮)』는 고대 주나라 때 여섯 가지 희생 을 기르는 목인(牧人)이란 관직이 있었다고 전한다. 소·말·양·돼지·개·닭이 여섯 희생이다. 가장 귀한 희생인 소도 제사 지내는 신분에 따라 등급이 나뉘어 있었다. 『예기(禮記)』 ‘곡례(曲禮)’는 “천자는 희우(犧牛)를 사용하고 제후(諸侯)는 비우(肥牛)를 사용하고, 대부(大夫)는 색우(索牛)를 사용하고, 사(士)는 양과 돼지를 사용한다”고 분류하고 있다.

 『상서(商書)』 미자(微子)편은 “천자는 제사 때 희생으로 반드시 순색(純色)을 사용하기에 색이 순수한 것을 희라고 한다(色純曰犧也)”고 적고 있다. 천자는 털빛이 하나인 순색의 소를 희생으로 사용했다. 제후는 살찐 얼룩소, 대부는 송아지, 사(士)는 양이나 돼지를 사용했다는 뜻이다.

 『맹자(孟子)』 양혜왕(梁惠王)조에는 제(齊) 선왕(宣王)이 흔종(釁鍾:희생의 피로 종의 틈에 바르는 것)에 쓰기 위해 끌려가던 소가 떠는 것을 보고 놓아주고 대신 양을 사용하라고 명한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들이 소가 아까워서 양으로 바꾼 것이라고 수군대자 맹자는 “군자는 짐승들의 살아 있는 꼴을 보면 그 죽는 꼴은 차마 보지 못하고, 죽을 때의 비명을 들으면 차마 그 고기는 먹지 못합니다”라고 옹호했는데 여기에서 사람에게는 모두 어쩌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人皆有不忍人之心)”는 성선설(性善說) 개념이 나온다.

 『장자(莊子)』 열어구(列御寇)에 ‘희생용 소〔犧牛〕’에 대해 “비단옷에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다가 태묘(太廟)로 끌려 들어갈 때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탓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소공(昭公)’조에는 꼬리가 고우면 종묘(宗廟) 제사에 희생으로 쓰여질 것을 우려해 제 꼬리를 물어뜯는 닭 이야기도 나온다. 짐승들도 희생으로 죽기를 원치 않는다는 뜻이다. 하물며 남에 의해 억지로 희생양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노르웨이의 이민자 2세 무슬림 소녀 소피아(13)가 “제가 다른 나라로 가면 이런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을까요?”라는 글을 올리자 “(테러는) 네가 아닌 우리 모든 어른의 책임이야”라는 답글 등이 올랐다는 기사는 소득수준 못지않게 정신수준이 선진국의 주요 기준임을 알게 해 준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희생양 찾기에 열심인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되돌아보게 하는 사례다.

이덕일 역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