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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防災>재는 국방과 마찬가지, 복지·환경보다 투자 우선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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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호 08면

정상만 국립방재연구소장이 최근 폭우가 쏟아진 서울 지역의 지도를 보여주며 원인과 방재대책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만일의 가능성에 대비한 예방적 투자를 강조했다. 조용철 기자

지난 26일부터 사흘간 서울과 경기, 강원 지역엔 유례없는 폭우가 쏟아졌다. 산사태가 곳곳에서 발생해 수십 명이 숨졌고 재산피해도 막대했다. 이를 계기로 기후 변화에 맞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방재대책 수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과학방재 실현을 위한 핵심 브레인’이란 기치를 내걸고 1997년 설립된 소방방재청 산하 국립방재연구소의 정상만(55) 소장에게 방재대책의 문제점과 개선책을 들었다. 그는 공주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 출신으로 지난해 5월 소장에 취임했다. 인터뷰는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국립방재연구소장실에서 한 시간가량 진행됐다.

정상만 국립방재연구소장이 진단한 국내 방재 현주소

-최근의 폭우를 놓고 우리나라 기후가 아열대성으로 변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수해 대비를 위해서는 기후 변화 요소 중 강수량의 증가 여부에 주목해야 한다. 시간당 30㎜ 이상의 호우발생 일수가 70년대는 48회, 80년대는 60회, 90년대는 68회였고 2000년대는 72회로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우리나라 기후를 아열대로 분류하기는 이르지만 기후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이젠 ‘이상기후’가 아니라 ‘일상기후’인 셈이다. ‘이상’도 여러 차례 반복돼 일어나면 ‘일상’이다. 그러면 거기에 맞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적응을 빨리 하는 게 관건이다.”

-이번 폭우엔 도심 침수와 기능 마비 현상이 두드러졌다.
“우선 짧은 시간에 비가 너무 많이 내렸다. 26일 자정부터 27일 오후 1시30분까지 불과 하루 반나절 동안 서울 대부분 지역에 400㎜ 넘게 내렸다. 관악구의 경우 6시간 연속된 강우량은 400년 만에 한번 있을까 할 정도다. 침수가 극심했던 강남역, 대치동 등의 경우 저지대에 도심이 형성돼 있고 배수체계가 부족했다는 점도 꼽을 수 있다. 또 과거 녹지나 나대지로 흡수되던 빗물이 도시화에 따른 불투수(不透水)성 도로나 인도에 막혀 그대로 흘러 넘치게 됐다. 급경사지 근처에 편의시설, 주거 시설 등이 많이 개발된 탓에 인명피해도 컸다.”

-방재 능력을 키우는 건 결국 ‘돈’ 문제와 직결된다. 국내 방재 예산은 선진국에 비해 어느 정도인가.
“선진국을 보면 주거와 식생활이 해결되고 나면 그 다음에 안전하게 사는 데 중점을 뒀다. 그런데 우리는 안전보다는 환경, 복지가 우선되고 있다. 안전을 위한 방재 분야는 뒷전이다. 산사태가 난 우면산도 환경을 앞세우면서 안전을 도외시한 부분이 크다. 방재 관련 연구개발(R&D) 예산을 보면 우리는 올해 796억원이 배정돼 전체 국가 R&D 예산의 0.5%에 불과하다. 반면 선진국은 2%가량 된다. 미국은 연간 30억 달러(약 3조1600억원) 이상을 홍수 재해 예방과 저감을 위한 연구개발에 쓴다.”

-방재 분야 투자가 미흡한 이유는 뭔가.
“선진국은 예방비 투자가 많고, 후진국은 복구비 투자가 많다. 우리는 아직 복구비가 훨씬 많다. 안전하게 살려면 투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국회는 표만 의식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안전’으로 표를 얻긴 어렵다. 예방은 눈에 안 보이니까 표가 안 되고, 그래서 투자가 안 된다.
정치권에서는 방재 투자보다는 재난이 발생하면 피해자에게 돈을 얼마나 보상해주느냐가 더 중요한 이슈가 되곤 한다. 정부 내에서도 방재에는 관심이 적다. 도로 등 각종 시설물 짓는 것에 비해 생색이 안 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방재투자는 국방투자와 같은 개념으로 봐야 한다. 만일의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이다.”

-투자가 부족하면 방재 연구 수준도 떨어질 텐데.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010년 현재 국내 자연재난·재해 예방 및 대응기술 기술 수준은 미국과 비교했을 때 약 6.6년의 기술격차가 난다. R&D 투자 부족이 주된 원인이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은 자연재난에 대비해 IT 기술을 적극 활용하고 있으며 대응 및 복구보다는 미리 재해를 사전에 탐지하여 예·경보 하는 쪽으로 시스템을 구축해가는 추세다. 우리도 IT 기술 활용도를 높여 가고 있지만 투자 부족으로 한계가 있다.”

-동일본 대지진을 돌이켜보면 여러 재난이 한꺼번에 겹쳐서 발생했다.
“그동안은 하나 하나의 재난만 다뤄왔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를 보면 지진→쓰나미→시설물 파괴→원자로 피해→방사능 누출→농작물 오염으로 이어지고, 결국 인간의 식탁까지 위협하는 형국으로 확산됐다. 복합적 재난이 된 것이다. 이제는 하나의 재난이 예기치 않은 다른 재난과 이어진다는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강남역이 침수되니까 일부 통신사의 휴대전화가 불통되는 사태로 이어지는 게 좋은 예다. 따라서 부처 간, 기관 간에 복합적 재난에 대비하기 위한 협력과 공동연구가 중요하다. 하지만 부처 간 이기주의가 심해서인지 같이 일을 안하려고 한다. 이게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

-효과적인 방재를 위해서는 주민 개개인의 대비도 중요할 텐데.
“일본의 경우 재난 상황을 가정하고 가족회의에서 각자의 역할과 행동요령을 사전에 설정한 뒤 이를 수첩에 적어 가지고 다니기도 한다. 개개인이 방재 훈련과 대비 활동에 능동적으로 참여한다는 거다. 우리도 재난에 대비한 행동요령을 미리 숙지해야 한다. 그리고 주택이나 차량 파손 등에 대비해서 보험을 가입할 필요가 있다. 피해 전부를 국가가 보상하라고 하는 건 무리다. 정부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주민도 같이 호흡을 맞춰야 한다. 유사시 출입금지나 비상대피 등의 경고에도 잘 따라야 한다. 선진국에서는 경고를 무시했다가 사고가 나면 절대 보상 안 해준다. 오히려 벌금을 물린다.”

-국내 방재는 ‘빈도’ 개념을 많이 써 왔다. 전면 수정이 필요하지 않나.
“빈도라는 개념은 현재의 상황을 과거 일정 기간 동안의 기록을 활용해 통계학적으로 추계하는 것이다. 50년 빈도, 100년 빈도는 50년, 100년 만에 한번 정도 발생할 확률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통계분석 시기와 데이터, 기간에 따라 설계 강우량이 달라지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소방방재청에서는 빈도 대신 ‘방재 성능 목표’라는 새 개념을 도입하기 위해 최근 자연재해 대책법을 개정해 입법예고했다. 빈도 대신 지역별로 처리 가능한 목표강우량을 설정해 대비하자는 취지다. 서울의 경우 단기목표(15년)로 한 시간 연속강우량을 95㎜로 잡았다. 중기목표(30년)는 시간당 105㎜, 장기목표(60년)는 시간당 120㎜다. 이렇게 하면 일관성 있는 방재시스템 구축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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