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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회] 미래 리더, 창의적 토양서 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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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대한상공회의소가 공동 기획한 '새천년 새기업상' 연중 좌담 시리즈의 첫번째 주제 토론이 22일 대한상의에서 각계 전문가들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이날 주제는 한국에서는 왜 손정의(孫正義)가 안 나오는가. 참석자들은 열띤 토의 끝에 새로운 패러다임에 빨리 적응하는 한국인의 기질로 봐서 재일교표 3세로서 소프트뱅크 제국을 일군 孫회장 같은 인물을 충분히 배출해 낼 수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다만 미래형 재계 리더를 기르기 위해서는 획일적인 사회 분위기와 정부 규제 등을 지양하고 교육개혁.벤처 인프라 구축 등을 통해 디지털 기업가 정신이 번창할 수 있는 토양을 가꾸는 일이 시급하다고 결론지었다.

▶조동성〓일단 손정의를 우리의 모델로 삼는다면 한국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김동재〓자기가 모든 것을 다할 수 없다. 손정의는 인수합병(M&A)이나 전략적 제휴.합작 등 아웃소싱을 빠르게 잘 활용했다. 종업원에게 파격적 인센티브를 준 것과 함께 손정의의 가장 큰 성공요인으로 볼 수 있다. 어느 정도 성공한 기업들은 자신감이 생겨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창업 초기 벤처에는 아웃소싱하는 법부터 가르쳐야 한다.

▶김형순〓윈윈(Win-Win) 전략이 중요하다. 미국에서는 어린이에게 '남을 도와라' 고 가르치고, 일본에서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 고 가르치는데 우리는 '남을 이기라' 로 가르친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이제는 공생하는 전략이 나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이재훈〓주제발표의 7가지 덕목 중 창의성과 혁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과거 대기업 체제에서는 오너쉽과 종업원의 주종관계가 강해 주어진 일을 이루는 데 급급했다. 업계도 정부의 지원.규제에 너무 길들여져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토양이 생기지 못했다.

▶김정수〓신뢰가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외국 기업들은 한국에 와서 신뢰 부족을 큰 어려움으로 꼽는다. 계약서대로 안되는 일이 많고 재무제표도 믿기 어렵다고 한다.

▶김형순〓그렇다. 우리 기업들은 불신을 기초로 한 시스템을 갖고 있다. 뭐뭐 하면 안된다는 형식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적극적인 일을 할 수 없다. 선진국은 일단 믿고 맡겨 놓은 다음 결과를 보고 보상하거나 벌한다. 거미줄 같은 감독 시스템과 규제의 사고방식을 고쳐야 한다.

▶조동성〓우리의 현실이 제2의 손정의를 탄생할만한 여건을 갖췄다고 보는가.

▶김형순〓그럴만한 국민의 기질은 충분하다고 본다. 다만 그런 여건을 앞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가령 우리에겐 리더쉽을 수용하는 자세가 부족하다. 요즘은 기술.마케팅.디자인 모두 생산자가 리드하면 수요자들이 따라가는 식이다. 팔방미인 격으로 모든 여론을 수렴해 평균치를 만들어내는 것은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지 않는다. 지나친 반(反)벤처 정서도 새로운 현상을 수용하는 자세가 부족한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재훈〓교육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 공교육보다 사교육에 치중하는 사람이 명문대에 더 잘 가는 현실은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다. 제도를 만들 때 극소수의 폐해를 근거로 규제를 만드는 일이 많아 우량한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일이 없지 않았다.

▶김정수〓한국 사람의 성향을 보면 손정의 같은 사람이 나올 법 하다. 조직보다 나를 먼저 생각하는 개인주의는 폐해도 많지만 오히려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일본보다 손정의식의 창의적 기업이 일어날 수 있는 풍토이기도 하다.

▶김동재〓우리는 견문이 너무 좁고 사고가 폐쇄적이다. 해외에 나가 보면 보고 들을 게 많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 화제도 언론 보도도 국내 지향적이기 일쑤다.

▶김형순〓공감한다. 홍콩만 가봐도 매스컴이 이웃 나라는 물론 전 세계 소식을 국내 소식과 같은 비중으로 전한다. 우리는 너무 국내 뉴스 일색이다.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경향이 너무 강하다. 다른 이야기지만 우리는 기업을 하겠다는 의욕이 강한 대신 기업 운영을 요령 위주로 하려는 경향이 지나치다. 기술.아이디어 하나만 갖고 승부하는 것도 좋지만 회사 골격을 제대로 가꿔 경영하겠다는 균형감각을 가져야 한다.

▶한정화〓이제는 남을 무조건 지배하겠다는 남성적 사고를 버리고 화합하고 이웃을 키워주는 문화를 키워야 한다.

▶조동성〓우리나라도 손정의 같은 인물이 나올 수 있다고 보는가.

▶김형순〓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휴대폰 사용이나 인터넷 주식거래 비중처럼 새로운 문물이 우리나라 같이 빨리 전파되는 나라가 없다.

▶이재훈〓이제는 정부가 시스템을 만들어 업계를 돕는 것보다 뒤에서 밀어주는 시대라고 본다. 가령 벤처확인 제도도 때가 되면 업계 자율과 시장에 맡기는 게 바람직하다. 또 지식사회의 공복으로서 공무원의 전문성 강화도 시급한 과제다.

▶김동재〓자금 등 직접 지원보다 벤처가 자랄 수 있는 인프라를 길러줘야 한다. 초창기 업체에게 자금조달.마케팅.홍보 등의 기초를 전수하는 민간 컨설팅이 더욱 활성화돼야 한다.

▶김정수〓일종의 모범생 컴플렉스를 버려야 한다. 순응주의나 획일주의를 불식하고 교육과 기업.사회조직 전반에 다양성을 인정하는 문화가 번져야 한다.

▶한정화〓리더를 길러내는 시스템도 필요하다. 일본 등 선진국은 마쓰시타정경숙처럼 유능한 경영자나 사회 지도층을 길러내는 '맨토링' (Mantoring)시스템이 발달돼 있다. 기업가는 돈으로 사회에 봉사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경험을 체계적으로 다음 세대에 전하겠다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정리〓홍승일 기자

참석자 명단

▶주제발표〓한정화 한국벤처연구소장(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사회〓조동성 서울대 국제지역원장(경영대 교수)

▶토론〓

김형순 로커스 대표
김동재 코리아 인터넷 홀딩스 대표
이재훈 산업자원부 산업정책국장
김정수 중앙일보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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