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69) 금강굴 혁대 액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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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희 감독의 ‘원점’. 신성일과 문희가 설악산 금강굴로 향하는 장면이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이만희 감독과 호흡을 맞춘 1967년작 ‘원점’의 하이라이트는 설악산 금강굴 혈투였다. 그해 초가을 설악산은 만산홍엽(滿山紅葉)으로 불타기 직전이었다. 이 감독은 주 촬영지가 되는 금강굴 앞에서 어떤 액션을 연출할지 고민을 거듭했다.

 우리는 금강굴 부근 산장에 짐을 풀고 다음날 촬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형제라도 그보다 더 정답기는 어려웠을 거다. 학창 시절 연극을 했다는 그는 나를 부러워했다.

 “신짱, 내가 신짱처럼 잘 생겼으면 영화배우 하고 있을 텐데. 거참, 머리만 커서….”

 그는 머리가 하도 커서 웬만한 모자가 맞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짱구형’이라고 부른 것이다. 양미간도 넓어 관상학적으로 마음이 커 보이는 인상이었다.

 이 감독이 고민한 대목은 주인공 석구가 자신을 죽이려는 조직원 두 명과 금강굴을 배경으로 철제 계단에서 싸우는 장면이었다. 지금도 금강굴로 연결되는 철제 계단은 밑에서 보면 아찔하기 이를 데 없다. 만에 하나, 굴러 떨어지기라도 하면 목숨까지 위태로웠다. 내가 철제 계단으로 도망가고, 두 명이 따라올라오는 설정. 곰곰 생각에 잠겨있던 이 감독이 갑자기 물었다.

 “신짱, 지금 무슨 혁대 하고 있어?”

 나는 옷걸이에 걸려 있는 바지에서 혁대를 빼냈다. 두껍고, 튼튼한 가죽 혁대였다. 워낙 움직임이 많은 탓에 절대 끊어지지 않는 혁대를 차고 다녔다. 이 감독은 자기 쪽 혁대 끝에 고리를 걸어 원형을 만들고, 내가 다른 쪽을 잡게 했다. 우리는 고리를 끼운 혁대를 양쪽에서 잡아당겨 보았다. 이 감독의 얼굴에 만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 감독의 아이디어는 이러했다. 배수진을 친 석구가 철제 계단에 혁대를 묶고 왼손을 거기다 연결한 채 싸운다는 것이다. 그러면 석구가 아무리 얻어맞더라도 떨어질 일이 없다. 게다가 혁대의 반동을 이용해 다시 치고 올라올 수 있다. 듣고 보니 대단한 발상이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액션을 촬영한 영화는 없었다. 나는 다음날 철제 계단 중간에서 왼손을 혁대에 묶고 오른손으로 신나게 싸웠다. 발 아래로는 천불동 계곡이 까마득하게 펼쳐져 있었다. 카메라 앵글을 금강굴 쪽에서 아래로 잡으면 화면에 엄청난 긴장감이 담겼다.

 김기영 감독 등 대다수 감독이 콘티에 모든 장면과 동작을 세밀하게 적어넣었다. 계획한 시간 내에 액션을 다 끝내도록 하려는 의도였다. 카메라 필름이 대단히 귀한 시대였다. 이런 방식으로 하면 시간과 필름을 절약할 수 있었다.

 반면 이 감독의 콘티는 아주 깨끗했다. 그는 콘티에 자신만이 알아볼 수 있는 부표만 쳐놓았다. 다른 사람이 훔쳐 보아도 알 길이 없었다. 모든 장면이 그의 머리 속에 들어 있었다.

 다른 감독들은 액션 장면을 내게 맡기다시피 했다. 특히 신인 감독들은 더했다. 나로선 큰 부담이 됐다. 먼저 영화에서 했던 동작을 리바이벌 하면 촬영을 쉽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 영화를 죄다 보다시피하는 관객들도 많았다. 그들에게 재탕한다고 욕 먹기 싫었다. 매 영화마다 새로운 액션의 디테일을 넣으려고 고심했다. 그 결과 지방 건달들은 나만 보면 이렇게 물었다. “신형, 정말 잘 싸웁니까? 맞짱 한 번 떠볼까요?”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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