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최중경의 어이없는 국영주유소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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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중경 장관의 지식경제부가 기름값 인하를 위해 전국에 1300개쯤 공영주유소를 만든다는 방침을 밝혔다. 주유소 부지는 국·공유지와 공영개발택지를 활용하고, 건설비용은 사회공헌에 관심 있는 대기업으로 하여금 대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기름은 석유공사가 직접 공급하고, 운영은 지방자치단체나 산하 공기업에 맡긴다는 것이다. 여기에 셀프서비스 등을 통해 가격은 일반 주유소보다 L당 70원쯤 낮게 유지할 것이라는 청사진까지 제시했다. ‘사회적 기업형 대안주유소’라고 이름도 그럴듯하게 붙였다. 지경부는 “필요하면 참여업체들이 최소한의 수익을 낼 수 있도록 정부 보조금을 지원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시장에 그냥 맡기면 이익을 내기 힘들 것 같으니 적자는 보지 않도록 국민 세금을 집어넣겠다는 말이다. 이쯤 되면 국영주유소로 불려도 손색이 없다.

 참으로 황당한 발상이다. 21세기에 소위 자본주의를 한다는 나라에서 주유소 운영에 세금을 투입한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최중경 장관은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엘리트 직업관료다. 그런 그가 이런 정책을 발표했다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주유소 건립에는 소방안전기준이 있는데 공공택지 등에 얼마나 지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무엇보다 시장경제 원리에 맞지 않는다. 기존 시장에 새로운 공공 참여자가 특혜를 받으며 진입하면 기존 업체들이 볼 손해는 어떻게 하란 말인가. 게다가 새 주유소가 손실을 보면 국가에서 보전해 준다고 하니 이 무슨 엉뚱한 논리인가.

 모든 것은 연초에 ‘기름값이 묘하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한마디에서 비롯됐다. 그 뒤 지경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4대 정유사의 팔을 비틀어 석 달간 강제로 기름값을 L당 100원씩 끌어내렸다. 행정완력을 동원했지만 그나마 별 효과가 없었다. 우리는 이미 수차례 그런 식의 가격통제로는 달라질 것이 없다고 말했지만 최 장관은 듣지 않았다. 대통령의 관심 사안이니 만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성과를 보이겠다는 욕심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욕만 앞선 어이없는 탁상 실험으로 현장주의를 강조하는 이명박 대통령(MB)에게 오히려 치명적 부담만 안기고 있다.

 전국의 주유소는 1만3000곳을 넘고 있다. 전문가들은 8000~9000개가 적정 숫자라고 한다. 당연히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의 높은 석유제품 값이 주유소가 적어서 생긴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 지경부는 “대형마트 주유소는 지금도 인근 주유소보다 60~70원 싸게 판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이 주유소 사업을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정부의 종용이 있었던 데다 마트 고객을 더 많이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다. 시행 3년이 넘었지만 숫자도 전국에 10곳에 불과하다. 무의미한 정책을 성공한 것인 양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정부는 1000원짜리 기름에 1000원의 세금을 붙이고 있다. 이렇게 연간 18조원 이상을 거둬들인다. 부자든 서민이든 10만원어치 기름을 넣는 순간 5만원의 세금을 낸다. 저소득층일수록 불리한 간접세다. 게다가 대부분이 목적세다. 거둔 세금의 용처가 도로건설 등 이미 정해져 있다. 교통량도 많지 않은 지방에 새로운 길이 계속 생겨나는 이유다. 정부는 황당한 국영주유소 구상을 당장 거두고, 그 시간에 과도할 뿐 아니라 이런 문제점을 안고 있는 유류세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