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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참나무 2200그루 죽어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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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시들음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는 남산의 참나무들. [엄지 인턴기자(한국외대 산업경영학과)]

애국가 2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하지만 남산엔 소나무만 있는 게 아니다. 참나무가 더 많다. 80㏊에 걸쳐 참나무가 있다. 이런 참나무의 잎이 붉게 물들고 있다. 단풍이 든 게 아니다. 시름시름 앓으면서 말라 죽는 것이다. 참나무 불치병인 ‘시들음병’에 걸려서다. 남산에 있는 참나무는 참나무류에 속하는 나무를 통칭하는 말이다. 졸참나무·갈참나무, 상수리나무·굴참나무 등이 참나무류에 속한다.

 26일 서울시에 따르면 7월 현재 남산공원 N타워 주변인 신갈나무 군락지 일대를 중심으로 참나무 시들음병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감염지역만 36ha, 2200여 그루다. 전체 참나무의 절반 가까이가 죽어가는 셈이다.

 남산에서 참나무 시들음병이 발생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8년에 처음 발견됐다. 당시 감염된 참나무는 500여 그루였다. 지금은 당시보다 4배나 늘었다. 올 들어 참나무 시들음병이 맹위를 떨치는 건 장마 때문이다. 남산공원 관리를 맡고 있는 서울시 중부푸른도시사업소 오순환 소장은 “유난히 길었던 장마 때문에 감염을 막기 위한 준비를 할 수가 없었다”며 “습한 날씨에서 온도가 올라가면서 변색이 더욱 심해졌다”고 말했다.

 참나무 시들음병은 ‘참나무 에이즈’라고도 불릴 만큼 한번 걸리면 치명적이다. ‘광릉긴나무좀’이라는 해충이 원인이다. 이 해충에 묻은 곰팡이가 나무 속에 퍼져 나무가 말라 죽는다. 병에 걸린 나무의 잎은 7월 말께부터 시들기 시작하면서 빨갛게 변색해 말라 죽는다. 현재까지 치료 방법은 없다. 서울시는 2008년 첫 발병 이후 수간주사, 약제 살포 등 다양한 방제작업을 실시했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추가 확산을 막기 위해 나무를 잘라낸 뒤 소각하거나 비닐을 씌워 해충이 다른 나무로 옮겨가지 못하도록 하는 게 전부다. 설령 앞으로 치료 방법을 찾더라도 유동인구가 많은 남산의 특성상 대규모 방제작업을 할 수 없는 현실적인 어려움도 걸림돌이다.

 정호성 한솔나무병원 원장은 “현재로선 끈끈이를 나무에 붙여서 해충을 잡는 것 말고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며 “곰팡이가 싫어하는 약물이 무엇인지 연구 중이지만 완치 방법을 찾으려면 앞으로 몇 년이 더 걸릴지 모른다”고 했다.

양원보 기자·김혜성 인턴기자(고려대 영어영문학과)

◆참나무 시들음병=병원성 곰팡이가 참나무류에 침투해 영양분과 수분을 공급하는 도관을 막아 결국 나무를 말려 죽인다. 매개충인 광릉긴나무좀이 나무 속으로 들어가 균을 퍼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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