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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의 입·코 없는 캐릭터의 비밀

중앙일보

입력

"입도 없고 코도 없는 너희들은 도대체 뭐야?"

지난해 10월부터 SBS에서 방영 중인 일본 애니메이션 〈구슬동자〉(수.목 오후 5시45분). 찬찬히 살펴보면 캐릭터가 무척 이색적이다. 눈만 멀뚱멀뚱하고 코도 없고 입도 없다.

단순미를 강조한 캐릭터 디자인이려니도 싶지만 그 뒤에는 요긴한 '비밀' 이 숨어 있다. 바로 국내 애니메이션 업계가 '타산지석' 으로 삼을 만한 제작비 절감에 관한 아이디어다.

실사 영화에서 초당 사용되는 프레임 수는 24.착시 현상을 통해 가장 자연스런 움직임을 끌어내는 수치다. 애니메이션 역시 초당 24장의 셀(한 장의 그림)이 필요하지만 이에 맞추려면 막대한 제작비가 들어간다.

미국의 폭스나 월트 디즈니사 등 메이저급이 아니고서야 24장을 모두 다른 그림으로 제작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한국과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대부분 제작 규모가 작아 선 녹음 후 제작 방식이 어렵다. 따라서 입모양과 대사의 불일치는 근본적인 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구슬동자〉가 흥미로운 점은 이런 한계를 일순간에 장점으로 바꿔버렸다는 것. 처음부터 아예 입이 없는 캐릭터를 설정, 녹음과 입 모양의 시간차를 없애고 8~10장의 그림을 반복 사용해 24 프레임을 메우고 있다.

중요한 사실은 그럼에도 움직임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것. 배급사인 서울애니메이션의 김선구씨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통해 초당 사용되는 그림 수를 줄여나가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제작 방식은 벤치마킹의 대상 "이라고 말한다.

각종 로봇물 시리즈에서 자주 등장하는 변신 장면도 비슷한 사례다. 미리 제작한 변신 장면을 매회 반복 사용해 3~5분 분량에 해당하는 제작비를 줄이는 것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아이디어가 있어 눈길을 끈다. 대원동화에서 제작, 내년에 선보일 예정인 3D 애니메이션 〈큐빅〉. 무엇보다 캐릭터의 독창성에 주목할 만하다.
여러 개의 주사위를 연결한 듯한 모습은 기존의 로봇 메카닉과 크게 차별화되는 장점이 있다. 일본에서 유행하는 로봇 디자인을 맥없이 흉내내던 이전의 '관습' 에서 벗어났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또 변신 등 응용이 가능한 로봇 디자인은 캐릭터 상품까지 염두에 둔 포석이다. 애니메이션 작품보다 캐릭터 산업의 부가가치가 훨씬 큰 점을 감안하면 바람직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니고서는 해외시장을 겨냥하기도 어렵다.

대원동화의 황정열 실장은 "오랜 하청 제작으로 인해 국내 애니메이션 업계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는 꽤 심각하다. 다양한 아이디어로 한계를 돌파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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