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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장기간 독도 국제재판 준비 … ICJ 소장도 일본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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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호 14면

대구지방법원 가정지원의 정재민(사진) 판사는 사건기록 더미와 씨름하는 틈을 쪼개 세 편의 장편소설을 탈고한 소설가다. 그가 하지환이란 필명으로 펴낸 소설 『독도 인 더 헤이그』는 독도에 관한 불편한 진실을 담고 있다. 전문가나 정부 관료에게선 좀처럼 들을 수 없는 얘기들이다.

외교부 영토해양과 파견 근무‘독도 소설가’ 정재민 판사

독도 문제를 놓고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일본과 소송전을 벌이게 된다는 설정부터 그랬다. ‘독도 문제가 국제 법정으로 갈 일은 없다’는 게 정부의 굳건한 입장이지만, 우리 의지와는 상관없이 ICJ 소송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그린 것이다. 실제 소송이 벌어지면 결과를 섣불리 예단할 수 없다는 경고도 소설 곳곳에서 등장한다.

정 판사는 이 소설을 인연으로 8월부터 1년 동안 외교통상부 영토해양과에서 파견 근무를 하게 됐다. 소설을 읽은 외교부 간부의 건의를 받아들여 김성환 장관이 그를 부른 것이다. 정 판사는 “소설 속에서 외교부 간부는 가장 무능한 사람으로 묘사했는데도 함께 일하자고 불러줘 놀랐다”고 말했다. 어떤 근무를 하게 될지는 아직 모른다고 했다.

-독도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사법시험 합격 후 법무관으로 갔다가 국방부 국제정책팀에서 일하게 됐다. 국방부 장관이 국회 독도특위에 출석할 경우에 답변 자료를 준비하는 일을 맡으면서 독도 문제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내가 역사학자나 국제법 전문가가 아니어서 논문이나 전문 서적을 쓸 수는 없지만, 소설이란 형태로 내 생각을 얘기한 것이다.”

-우리 의지와는 상관없이 국제사회의 압력에 의해 ICJ 로 가는 소설 속 설정이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을까.
“실례가 있다. 그리스와 터키가 1970년대 에게해상의 섬을 놓고 영토분쟁을 벌였다. 사태가 심각해져 무력분쟁 직전까지 가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소집돼 ICJ에서 해결하라는 권고를 냈다. 46년 영국과 알바니아가 코르푸 해협 통항권을 놓고 싸울 때도 안보리가 권고를 냈고 결국 ICJ 소송이 이뤄져 영국이 이겼다. 독도 문제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본다. 무력분쟁 조짐이 있으면 안보리가 소집된다. 어민들이 조업을 하다 일어난 사소한 사건으로도 이런 사태가 촉발될 수 있다. 그때 ICJ에서 해결하라는 권고가 나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4년이란 시간을 들여 소설을 쓴 것도 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자 함이었다.”

-ICJ 소송이란 당사자 쌍방이 모두 동의해야 성립되는 것 아닌가.
“그렇긴 하다. 하지만 일본이 권고를 받아들이는데 우린 끝까지 거부하며 버틸 수 있을까.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한국이 유엔 권고를 무시하고 국제사회의 압력을 감당해 내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지금부터 대비해야겠다.
“우리가 어마어마한 국방비를 쓰면서 전쟁에 대비하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독도 문제도 소송까지 안 가는 게 최선이지만 대비는 해둘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소송을 하자는 입장인 만큼 준비도 잘 돼 있다. ICJ 소송은 국제적으로 권위를 가진 국제법 교수들이 소송을 대리하는데, 쓸 만한 사람은 이미 일본 외무성이 자문위원으로 모시고 있다. 지난해 숨진 세계적 석학 이언 브라운리 교수도 그랬다. 일본인 중에서도 ICJ 재판관이 여태까지 세 사람 배출됐다. 우린 한 명도 없다. 현 ICJ 소장인 오와다 히사시는 마사코 왕세자비의 친정 아버지다. 일본은 20세기 초에 이미 두 차례 국제 소송을 했고, 최근에도 남방참다랑어 국제소송을 경험했다. 우린 소송 경험도 없고 영토분쟁 전문가도 거의 없다. 국제 공법 전공자는 정말 드물다. 그런 걸 해봤자 로펌 취업도 못하고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전문가를 양성할 필요가 있다.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교수 밑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해외의 전문 로펌에서 실무 경험을 쌓게 해야 한다. 그런 전문가가 대여섯 명만 있으면 얘기는 달라진다. 지금 당장 일본과 소송을 하게 되면 부장판사를 해 본 사람과 이제 갓 로스쿨 졸업한 사람이 재판에서 맞붙는 격이다. 똑같은 근거를 갖고 재판에 임해도 어떤 변호사를 써서 어떻게 소송을 이끌어 가느냐에 따라 승패가 엇갈리는 법이다.”

-독도 상공을 비행한 대한항공에 대해 일본 외교관들에게 탑승금지령을 내리고, 자민당 의원들이 울릉도 방문을 계획하는 등 일본은 끊임없이 독도 문제에 대한 주장을 하고 있다. 일본의 전략은 무엇일까.
“일본의 행위는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들어 ICJ로 갖고 가려는 것이다. 안보리 상정은 이미 시도한 적이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52년 이른바 평화선을 선포했을 때였는데 미국이 난색을 표시하는 바람에 안 됐다. 상정 시도는 언제든 할 수 있지만 아직은 때를 기다리는 것 같다. 만일 일본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하는 등 발언권이 높아질 경우엔 얘기가 달라진다.”

-독도 문제에 대한 도발이 있을 때마다 정부는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해양과학기지를 세운다는 등의 대책을 내놓고 있다. 법률적 견지에서 평가하면 어떤가.
“정치적·국민통합적 의미가 있을진 몰라도 법률적 의미는 전혀 없다. 국민을 오도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영토분쟁 소송에서는 이른바 ‘결정적 기일’을 언제로 잡느냐가 중요하다. (※결정적 기일이란 분쟁이 발생한 시점을 먼저 확정하고 그 시점을 기준으로 영유권이 어느 쪽에 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따라서 결정적 기일 이후 일어난 사건이나 행위는 영유권 판단에 아무런 효력이 없다.) 독도 문제의 결정적 기일은 1952년으로 보는 게 다수다. 이승만의 평화선 선포 이후 양국 정부가 서로 공문서를 주고받으며 치고 받은 시점에 분쟁이 시작됐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52년 이후에 우리가 한 조치들은 적어도 ICJ 재판정에서는 모두 무효가 된다. 아무리 돈을 들여 독도에다 건물을 짓고 시설물을 설치해도 정부의 설명과 달리 영유권 강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실효적 지배’란 용어도 우리가 사용하면 안 된다고 본다. 영어로 옮기면 ‘이펙티브 아큐페이션(effective occupation)’이 되는데 이는 1928년 중재재판관 막스 후버가 결정문에 처음 사용한 것이다. 쉽게 설명하면 어떤 사람이 주인 없는 땅을 발견해 자기 땅으로 삼기 위해서는 발견 자체만으론 부족하고 그 땅에서 일정 기간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니 독도에 대해 우리가 실효적 지배란 말을 쓰면 ‘원래는 우리 땅이 아닌데 지금 사용한다’는 의미가 돼 오히려 ‘독도는 주인 없는 땅’이라고 고백하는 셈이 된다.”

-일본의 독도 시비 걸기가 최근 들어 더 잦아진 느낌이다. 도대체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할까.
“문제가 터질 때마다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근본 대책이라면 일본이 다시는 그런 주장을 못하도록 일본의 입을 막는 건데, 방법은 전쟁을 하거나 ICJ 재판을 통해 승복을 받는 것밖에 없다. 모두 불가능하다. 어지간한 일본의 주장은 철저히 무시하는 게 상책이다. 독도를 점유하고 있는 우리는 가만 있으면 되지만 일본은 부단히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내가 흔히 드는 비유인데, 우리는 그냥 땅 위에 서있고 일본은 러닝머신 위에 올라 있는 상황이다. 일본이 뭐라고 주장하면 ‘그래 너 달리느라 얼마나 힘드니’라고 웃어넘기면 된다. 그런 방법으로 분쟁을 안 만드는 게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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