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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 먹고 QR코드 찍으면 오페라 초대합니다 ”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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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호 26면

Q.아트 마케팅이 무엇입니까? 아트 CRM은 또 뭔가요? 임직원이라면 모를까 고객의 AQ(Artistic Quotient) 지수를 높이는 게 경영에 무슨 도움이 되나요?

경영 구루와의 대화<8> 윤영달 크라운해태 회장③

A.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은 고객관계관리로 번역하는데, 기업이 고객관리 툴로 사용하는 소프트웨어 등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아트 CRM을 합니다. 크라운·해태 제품 포장 안팎에 인쇄돼 있는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스캐닝하면 구매가격의 10%에 해당하는 포인트가 자동 적립됩니다. 이 2D(2차원) 코드를 스캐닝하려면 뷰 파인더 같은 프로그램을 내려받아야 합니다.

포인트는 블럭의 형태로 우리 회사 서버에 쌓입니다. 이때 휴대전화 번호가 아이디(고객 고유번호) 구실을 하죠. 다른 고객 정보는 수집하지 않습니다. 신상에 관한 개인 정보를 보유하지 않으려 선택한 방법입니다. 아트 CRM이라고 명명한 것은 이렇게 누적된 블럭으로 아트밸리의 AQ 향상 프로그램을 체험하거나 우리가 주최하는 공연을 관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매 고객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아트 활동에 초대하는 것이죠. 말하자면 고객에 대한 일종의 예술적 서비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객을 초대할 때도 휴대전화로 QR코드를 전송해 줍니다. 공연장에 와서 전송받은 QR코드를 스캐닝하면 좌석이 지정된 입장권을 받을 수 있어요. 여기까지는 우리 회사가 주최하는 국악 공연 때 이미 시험 운용을 마쳤습니다. 정착이 되면 장차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 가수도 초청해 우리 고객만을 위한 공연도 열 생각입니다.

시험적으로 운용을 해 보니 반응이 뜨겁습니다. 아트 블럭 회원 수가 약 70만 명입니다. 특히 AQ 향상 프로그램에 대한 참여 욕구가 강합니다. 이 고객 풀이 앞으로 마케팅을 할 때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게 될 겁니다.

사각형의 QR코드를 제품에 표시한 것은 우리가 식품업계 최초입니다. 그 전까지는 선으로 된 1차원 바 코드를 썼었죠. 외국에도 선례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 우리는 이런 용도로 쓰려고 펜 형태의 QR코드 전용 리더기를 개발했습니다. 몇 십억원을 들여 만든 리더기를 몇 만 개 보급했는데 스마트폰이 확산되면서 무용지물이 됐죠. 스마트폰이라는 ‘영물’이 나오리라는 것을 내다보지 못한 탓이죠. 하기는 이렇게 스마트한 세상의 도래를 누가 알았겠습니까.

누적 포인트는 우리 아트 블럭 사이트(www.art-block.co.kr)에서 고객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포인트에 해당하는 아트 블럭은 구매한 제품의 가격에 따라 층위가 다르고, 제품에 따라 색깔도 다릅니다. 그래서 고객별로 누적 포인트가 같아도 블럭이 쌓인 모습이 다릅니다. 고객의 제품 선호와 성향을 파악하고, 선택한 예술 서비스를 보고 사후적으로 해당 고객의 예술에 대한 취향도 알아내기 위한 장치죠. 역으로 어떤 공연을 원하는지 우리가 직접 물어볼 수도 있고 고객으로 하여금 투표를 하게 할 수도 있어요. 한마디로 구매 고객과 양방향적인 소통이 가능합니다. 이렇게 차별화된 CRM 기법을 처음 도입했다는 명목으로 2009년 한국정보산업협회가 제정한 고객중심 경영대상 제조 부문 대상을 타기도 했습니다.

아트 CRM은 아트 마케팅의 일환입니다. 아트적인 요소를 마케팅에 활용하는 거죠. 일례로 우리는 반 고흐의 ‘해바라기’와 ‘밤의 카페 테라스’, 엘리자베스 루이 비제 르브룅의 ‘딸과 함께 있는 자화상’, 심명보 작가의 ‘백만송이 장미’ 등 순수 미술 작품을 제품 포장에 사용했습니다. 제품 포장에 인쇄된 행운번호를 홈페이지에서 입력하도록 해 고객 1000명을 램브란트 등의 작품이 전시되는 서양미술거장전에 초대한 것도 아트 마케팅의 일환이었습니다.

우리 제품 발리 초콜릿은 추상 회화의 창시자로 불리는 몬드리안의 작품 형태로 면을 분할하는 파격을 시도했습니다. 꺾어 먹기 좋게 선을 음각한 일반적인 초콜릿과 달리 몬드리안의 그림을 응용해 불규칙적이지만 아름다운 비율의 사각형들로 구성되도록 선을 양각한 겁니다. 초콜릿의 포장을 벗기는 순간 “야 몬드리안 그림이네” 하는 감탄사가 절로 터지게 만든 거죠.

한번은 부산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 임직원들은 장승 만들기를 다 체험했는데, 이 장승 깎는 방법을 가르치는 한국장승학교가 경남 고성에 있습니다. 그래서 부산의 직원들에게 이 학교에 가서 더 배워 보라고 했죠. 이렇게 배워서 만든 장승이 자꾸 늘어가는데 딱히 용도가 없는 거예요. 어느 날 소매점을 하는 점주 고객에게 이 장승을 줬더니 아주 좋아하더랍니다. 이번엔 우리 제품인 과자 묶음에 작은 장승을 꽂아 놓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과자가 날개 돋친 듯이 팔리더래요. 전국적으로 확산시키자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제가 막았습니다. 원 플러스 원 제품으로 인식돼 우리가 만드는 제품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사례에서 아트 마케팅에 대한 시사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미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마케팅 기법이 먹힌다는 것이죠. 요즘은 직원을 내부 고객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내부 고객이 좋아하는 체험이라야 외부 고객도 좋아합니다. 박스 아트, 병 아트 등의 AQ 향상 프로그램이 하나 개발되면 몇몇 사람이 참여해 보고 나서 우리 직원들에게 체험을 시킵니다. 이들 가운데 잘하는 사람들은 더 고난도의 단계로 올라가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매뉴얼과 사용할 도구를 만들고 체험에 필요한 재료의 공급원도 찾아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의 체험 프로그램이 완성됩니다. 그러고 나면 점주 고객들에게 이 코스를 체험해 보게 하죠. 우리는 장차 일반 고객에게도 이런 경험을 제공할 겁니다.

크라운·해태는 왜 이런 시도를 하는가. 고객들의 심미안 내지는 AQ 지수를 높이려는 겁니다. 그래서 고객들로 하여금 더 품격 높은 제품을 요구하게 하려는 겁니다. 우리는 더 고급스러운 과자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런 과자를 고객이 원하지 않으면 만들려야 만들 수가 없어요. 고객의 눈이 높아져 더 멋진 과자, 더 아름다운 제품을 찾게 된다면 제조 원가가 문제이겠습니까.

취향이 고급한 사람들이 먹는 과자, 앞선 사람들의 제품이라는 평판을 얻으면 그땐 세계인들이 다 먹게 될 겁니다. 이런 경지에 이르면 사실 맛이나 향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식성과 냄새에 대한 사람들의 취향은 어쩌면 학습이 된 건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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