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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가 깨어나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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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경민
뉴욕 특파원

남수단 독립기념식 현장은 마치 펄펄 끓는 용광로 같았다. 섭씨 40가 넘는 살인적 폭염 속에도 사람들은 주술에 홀린 듯 껑충껑충 뛰었다. 새 국기가 된 수단인민해방군(SPLA) 군기가 올라가고 광장에 국가가 울려 퍼지자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7월 9일은 그들에게 단지 수단으로부터 독립한 날이 아니었다. 수단 내전은 서로 다른 인종·종교·언어의 두 나라를 영국이 멋대로 병합시킨 데서 비롯됐다. 19세기 서구 제국주의가 씌워놓은 그 굴레를 스스로의 힘으로 벗어 던진 날이기도 했다. 그것도 주민투표라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루어낸 건 기적이었다.

 아프리카 역사에 새 장을 연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고민의 실마리는 현장에 가보니 금세 풀렸다. 남수단은 세계에서 가장 낙후된 나라다. 그런데 수도 주바엔 휴대전화를 든 사람이 흔했다. 거리 곳곳엔 삼성전자 휴대전화 광고판이 눈에 띄었다. 휴대전화는 소통의 상징이다. 소통은 자각을 낳는다.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휩쓸고 있는 ‘아랍의 봄’ 민주화 시위도 소셜네트워크(SNS)라는 ‘소통 혁명’에서 비롯되지 않았던가. 우물 속에 갇혀 있던 아프리카인도 세상과의 소통을 통해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남수단뿐 아니라 이집트·에티오피아도 마찬가지였다.

 아프리카가 잠에서 깨면 세계 역사의 판도도 바뀐다. 아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대륙에 10억 인구가 살고 있다. 방대한 지하자원은 얼마나 묻혀 있을지 가늠조차 어렵다. 식량·관광 자원도 무궁무진하다. 그동안 아프리카가 미개지로 남은 건 고질적인 내전 때문이었다. 그런데 새 역사가 시작됐다. 코트디부아르에선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무력을 앞세운 전임자를 몰아내고 정권을 잡았다. 남수단은 국민투표로 내전에 마침표를 찍었다. 물론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도움이 있긴 했다. 그렇지만 아프리카인 스스로 자각하지 못했다면 민주 정부도, 독립 국가도 한낱 춘몽(春夢)에 불과했을지 모른다.

 벌써 세계 각국은 아프리카로 눈을 돌리고 있다. 중국의 행보는 기민하다. 보는 이마다 ‘니 하오’라고 인사를 건네는 것만 봐도 알 만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도 아직 기회는 있다. 아프리카는 내전의 폐허에서 나라를 새로 건설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아무래도 중국·일본을 모델로 삼는 건 버겁다. 이와 달리 한국은 일제의 식민 통치와 6·25 전쟁을 딛고 일어선 나라다. 아프리카인이 유독 한국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다. 남수단엔 ‘울지마 톤즈’의 주인공 고 이태석 신부가 물려준 소중한 유산도 있다.

 아프리카 유엔 평화유지군에 한국군을 파견하는 것부터 검토하면 어떨까. 이미 한국군은 아프가니스탄과 동티모르에서 명성을 얻은 바 있다. 아프리카 곳곳에서 한국 기업이 활동무대를 넓히고 있는 모습을 접한 건 다행스러웠다. 그런데 이제 기어를 한 단 더 올릴 때가 됐다. 50년, 100년 앞을 내다보는 안목(眼目)이 절실하다. 아프리카가 세계의 성장엔진이 될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 (남수단 주바에서)

정경민 뉴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