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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공주 앞에서 공연 펼친 아이돌 그룹 출신 무용수 … 권위 있는 국제대회서 1위 석권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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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드라마, K-팝, K-클래식…에 이어 이젠 K-현대무용이라는 말도 나올 것 같다. 5일 그리스에서 폐막한 헬라스 국제무용대회 현대무용 부문에선 남진현(22ㆍ중앙대)씨와 진병철(27ㆍ경희대 대학원)씨가 공동 1위를 수상한 데 이어 2,3위도 한국인이 차지했다. 한국ㆍ프랑스ㆍ중국 등 7개 국 100여 명이 참가한 이 대회는 독일 베를린 국제무용 대회와 함께 현대무용 부문에서 권위 있는 대회.

이번 1등을 차지한 남진현씨는 이력이 독특하다. 그의 이름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아이돌 그룹, 특공무술,안양예고 비보잉,SBS ‘스타킹’ 대상 등 관련 검색어가 줄줄이 뜬다. 동명이인이 아니라 동일인물이다.

'연예인 활동을 하다 무용수가 돼 국제대회에서 상을 탔다?' 그의 정체가 궁금해 12일 오후, 그를 나보기로 했다. 179cm에 다부진 근육질 몸매를 가진 한 남성이 꼿꼿한 자세로 걸어왔다. 한국의 현대무용계를 짊어갈 차세대 무용수 남진현이다.

-이력이 많다. 먼저 헬라스 대회의 수상부터 이야기하자.

“그리스에 도착한 날, 대회가 열릴 극장을 미리 가보려고 길을 나섰는데 소매치기를 당했다. 연습날엔 무대에 유리 파편이 있어 발에 피가 났다. 공연 당일엔 목이 아파 진통제를 5알이나 먹었다. ‘이번 공연은 꽝이겠구나’ 생각했다. 마인드 컨트롤을 하자고 했다. 그래서 더 안정된 몸짓이 나왔나 보다.”

-현대무용은 좀 난해하다. 어떤 내용이었나.

“주제는 ‘히든 라이트’다. 내면에 숨겨진 빛을 찾으려는 인간의 고됨을 표현했다. 하지만 밝음은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결국 나이가 들고 시들어가면서 마지막에 이를 발견하게 된다. 한 사람의 인생을 진심을 담아 표현했다. 음악은 3분 가량의 알바노니 아다지오 G단조를 편곡했고 의상은 동양의 몽환적인 느낌을 살려 흐느적거리는 질감을 택했다. 최상철 교수의 지도 아래 3개월간 연습했다.”

-최연소 수상자다.

“운이 좋았다. 대선배들이 많이 참가했고 공연 전날에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주눅이 들었다. 하지만 제일 어리니까 큰 부담이 없었다. 심사위원들에게 보여주는 춤사위가 아닌 내 안에 숨겨진 고뇌만 생각했다. 진심이 관객에게 전해진 것 같다. 어렸을 때 무술을 했는데 이 때문에 퍼포먼스가 힘있고 꽉 차 있다는 평을 들었다.”


-외모를 보니 연습보다는 타고 난 재능으로 수상한 것 같다.

“출전자 중 연습량은 최고라고 자부한다. 하루 10시간 이상씩 무용실에서 구토를 해가며 연습했다. 물구나무를 서는 동작이 있는데 정수리 부분의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피가 났다. 피부과에 가서 치료를 받고 듬성듬성 빠진 머리카락 때문에 흑채를 뿌린 적도 있다. 무용수의 무대 뒤는 고난 수행 그 자체다. 몸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고기 4~5인분을 먹어야 체력이 달리지 않는다.”

-어떻게 무용을 시작했나. 처음부터 ‘이거다’ 하고 꽂혔나.

“그렇지 않다. 6살 때부터 특공 무술을 배웠다. 외삼촌이 사범이었다. 몸을 쓰며 뛰어노는 게 재미있었다. 주특기는 쌍절곤 다루기와 덤블링. 중학교 1학년 때 특공무술 공인 4단을 취득했다. 그러다 무술의 깊이(?)를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어머니에게 중국 소림학교에 보내달라고 졸랐다. 어머니는 나를 혼자 중국으로 보냈다. 공항에서 베이징소림무술학교까지 생판 모르는 한국인에게 길을 물어 갔다. 할 줄 아는 말은 한 마디도 없었기 때문에. 다행히 소림학교에 있는 한국 형들의 도움으로 밥은 챙겨 먹을 수 있었다. 하루 세 끼 먹는 시간 빼고는 무술 연습만 했다. 잠은 쿠션이 아닌 나무 판자에서 잤다. 호랑이권법, 독수리권법, 원숭이권법 등을 익혔다.”

-소림학교를 다녀온 뒤 계속 무술을 연마했나.

“외삼촌과 무술 대결을 펼치면서 내공을 쌓았다. 고등학교를 입학해야 하는데 억압된 학교 시스템이 싫어 부모님께 대안학교를 보내달라고 했다. 담임교사는 안양예고를 추천했다. 내가 예고를? 무슨 재주로? 그때 현대무용인 ‘슈퍼스타 예수’를 보게 됐다. ‘바로 저거다’ 싶었다. 무술과 무용을 접목시켜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로 했다.”

-아이돌 그룹을 결성해 가수 활동도 했다.

“고1 때 한 기획사에서 연락이 왔다. 중학생 때 TV프로그램에 출연해 특공무술을 선보였는데 그것을 보고 전화한 것이다. 2006년 아카펠라 그룹 ‘ XING(씽)’ 리더(보컬)를 맡았다. 국내에서 라이브공연을 펼치긴 했지만 주로 태국 활동이 많았다. 한-태 수교 50주년기념 콘서트에 대표 가수로 초청받았다. 태국 공주 앞에서 공연한 기억도 난다. 가요차트에 오르기도 했는데 ‘씽’ 바로 위에 ‘동방신기’가 랭크돼 있었다. 당시 함께 활동한 멤버가 댄스그룹 ‘비스트’의 용준형과 ‘유키스’의 케빈이었다.”

-2007년 네티즌 사이에서 ‘안양예고 무한도전’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인기를 끌었다.

"고교 친구들과 아크로바틱+특공무술+야마카시 등을 접목한 퓨전 무용을 만들었다. 덤블링을 넘고 벽을 타고 계단을 순식간에 뛰어 넘었다. 이를 커뮤니티 사이트 등에 올렸는데 반응이 좋았다. 비슷한 시기에 SBS ‘스타킹’에 출연해 특공무술을 선보여 대상을 받기도 했다. ‘씽’ 멤버가 아닌 남진현 개인으로 나갔는데 연예계 활동 초반이라 사람들이 거의 알아보지 못했다.”

-왜 연예인 활동을 접었나. 제대로 인기를 얻지 못해서였나.

“‘박수칠 때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었는데 가수 생활은 기획한 대로 행동해야 하는 한계가 있었다. 현대무용이라는 순수 예술을 택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연예인들 중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나 역시 그랬다. 큰 박수와 팬들의 사랑을 받다가 조용히 자기 수행을 해야 했으니까.”

-지금은 어떤가. 선택의 후회는 없나.

“한국의 현대무용 수준은 굉장히 높아졌다. 쇼트트랙, 양궁처럼 한국에서 1등하면 세계에서 1등한다고 보면 된다. 무용을 선택하길 잘했다. 한국과 세계 정상을 밟아볼 기회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외국보다는 대중성이 떨어진다. 어렵다고 생각한다. 영화ㆍ뮤지컬 등은 음성으로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현대무용은 몸짓으로 전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하지만 현대무용이야 말로 춤사위 하나에 여러 해석을 담을 수 있는 장르다. 한번 공연을 본 분들은 감동의 여진이 계속된다고 한다. 또 예전엔 ‘공부를 못해서 무용하냐’ ‘남자가 할게 없어서 무용하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하는데 이젠 아니다. 남자 무용수는 전문직 종사자로 구분한다.”

-남진현에게 무용은 어떤 존재인가.

“감정의 분출구다. 춤을 추다 안 추면 금단현상이 온다. 그리스를 다녀와서 이틀 동안 춤을 추지 않았는데 뭔가 불안하다. 무용은 내 신체 중 하나다. 또 무용은 내 머릿속에서 나오는 창작의 산물이다. 몸은 수백 수천가지의 감정을 뽑아낼 수 있다. 얼마나 대단한 도구인가.”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10월에 국립극장에서 ‘논쟁’이라는 작품을 올릴 예정이다. 또 한번 내 몸짓을 펼쳐보이고 싶다. 앞으로 더 많은 이들에게 현대무용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싶다. 충분히 대중화될 수 있는데 기회가 부족했다. 현재 구상하는 것이 최고의 가수와 함께 무대를 꾸미는 것이다. 노래를 부르는 이의 감정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관객에게 훨씬 쉽게 다가갈 것 수 있을 것이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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