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석꾼', 부동산졸부, e-귀족까지 부의 변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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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1백년 역사상 수많은 거부(巨富) 들이 있었다. 땅 부자도 있었고 수출 부자도 있었다. 정상(政商) 도 있었고 차관 부자, 원조 부자도 있었다. 격변기엔 부자가 되는 방식이 바뀌기 때문이다. 거창하게 말하면 자본 축적 방식의 변화 때문이다.

예전에는 지주였다. 만석꾼 정도 되면 거부 소리를 들었다. 연간 쌀 1만 가마니를 생산하는 땅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어느 순간 자본으로 바뀌었다. 대규모 공장을 짓고 사람을 고용해 물건을 만들어 팔면 돈을 엄청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노동자로 변신해 공장으로 들어갔고, 공장을 건설한 자본가들은 이들을 잘 조직화해 가급적이면 값싸게 물건을 만들려 했다.

때때로 돈을 잘 버는 품목이 변하긴 했다. 한때는 신발이나 섬유 등 경공업제품이기도 했고 선박이나 자동차 등 중공업제품이기도 했다. 이런 흐름에 시의적절하게 적응, 변신하면서 수십~수백년을 ''탁월한 자본가'' 소리를 들으며 거부로 사는 사람도 있었다. 때로는 10년을 못 채우고 망한 자본가도 있었다.

이처럼 품목이 변하고 사람도 달라졌지만, 그러나 "돈이 있어야만 돈을 버는 시대''는 변하지 않았다. 지주에서 자본가로, 부자의 개념이 달라지는 이 시기가 바로 산업혁명이다. 기계화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해방 이후 지금까지가 그랬다.

최근 부자의 개념이 다시 달라지고 있다. 인터넷 혁명이라고도 하고 디지털 혁명이라고도 하는 새 세상이 열리고 있다. 지식과 정보가 부의 근원이 되고 있는 시대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거부가 될 수 있는 특징을 가진 시대다. 그럼으로써 "돈이 돈을 버는"기계화의 시대가 안정돼 가면서 영원히 변치 않을 것 같던 부자들의 구성이 달라지고 있다. 재벌 2세나 3세만이 부자인 것이 아니라 벤처 부자들도 거부의 반열에 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지금의 벤처 부자는 과거의 땅부자나 수출 부자 등 한때 반짝했던 부자들과는 종류가 다르다. 개개인은 망하고 흥할 수 있지만 벤처 부자라는 단어는 큰 시대의 개막을 말해 주는 것은 아닌지-. 지금을 디지털 혁명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런 것 같다.

김영욱 기자 <이코노미스트 제5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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