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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계·흑인 갈등 … 주민투표로 내전 종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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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멘케리오스

살파 키르 마야르디트(60) 남수단 초대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독립기념식의 주인공이었다. 남수단 독립의 아버지 존 가랑(John Garang)의 뒤를 이어 수단인민해방운동(SPLM)을 이끌었다. 그가 늘 쓰고 다니는 카우보이 모자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하다. 이 모자는 2005년 수단 정부와 ‘포괄적 평화협정(CPA)’을 맺을 당시 중재자로 나섰던 조지 W 부시(George W. Bush)가 선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로선 수적으로나 경제력으로나 열세였지만 수단 정부에 맞서 독립을 쟁취해 낸 상징이 된 셈이다. 그러나 평화협정은 남북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좌초 위기를 맞았다.

 꺼져 가던 불씨를 살려낸 건 반기문(67) 유엔 사무총장이었다. 2007년 사무총장에 취임한 그는 30만 명의 희생자를 낸 다르푸르 사태에 개입하면서 수단 사태의 본질을 이해하게 됐다. 수단은 아프리카가 안고 있는 모순의 집합체였다. 1956년 영국이 수단을 독립시키면서 우간다 지배하에 있던 남수단을 멋대로 병합했다. 이후 이슬람교도가 장악한 북쪽 아랍계는 기독교와 토속신앙을 믿는 남쪽 아프리카계 흑인을 철저히 소외시켰다. 수단에서 생산되는 원유의 75%가 남부에서 나왔으나 수익은 모두 북부 차지였다. 저항세력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도 이어졌다. 종족·종교·언어가 달라도 너무 달랐던 두 나라는 애초부터 독립국가로 대등하게 공존하는 게 평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길이었던 셈이다.

 반 총장은 승부수를 던졌다. 그는 에리트리아 독립전쟁의 영웅이었던 하일리 멘케리오스(Haile Menkerios·65)를 지난해 2월 사무총장 특별대표로 긴급 투입했다.

멘케리오스는 에티오피아에 맞서 독립투쟁을 벌인 에리트리아 혁명가였다. 무엇보다 그는 남·북 수단은 물론이고 아프리카 독립투사 사이에서도 ‘큰형님’으로 통했다.

 아프리카 각국은 남수단 주민투표에 코웃음을 쳤다. 50년 동안 끌어온 내전을 주민투표로 종식한다는 건 당시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해법이었다. 그러나 반 총장은 “유엔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밀어붙였다. 그의 뜻을 확인한 멘케리오스는 오마르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과 마야르디트를 끈질기게 설득했다. 한때 혁명의 대의로 의기투합했던 사이였기에 그의 직언은 알바시르에게도 통했다.

 지난 1월 30일 남수단 주민투표 결과 98.83%가 독립에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나온 순간 남수단 독립은 기정사실이 됐다. 유전지대인 남수단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 했던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도 수단의 평화를 위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주바(남수단)=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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