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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부속품이던 정원 … 당당한 주인공으로 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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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스위스 건축가 피터 줌토르와 네덜란드 조경 디자이너 피에 아우돌프가 함께 완성한 영국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 © Peter Zumthor, John Offenbach 촬영.

“정원이야말로 진정한 조화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건축의 배경을 생각할 때 항상 정원을 먼저 상상한다. 정원은 마술적인 장소다.” 2009년 ‘건축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스위스 건축가 피터 줌토르(Peter Zumthor·68·사진)가 정원예찬론을 폈다. 그는 “젊었을 때는 자연을 당연하게 여겼다. 하지만 나이 들수록 풀과 꽃을 보며 내가 자연의 일부임을 깊이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줌토르의 생각은 그가 설계한 영국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에 그대로 담겼다.

최근 모습을 공개한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이 화제다. 세계적인 건축가 줌토르와 요즘 국제 무대서 주목 받는 네덜란드 조경 디자이너 피에 아우돌프(Piet Oudolf)의 협업이다.

 아우돌프는 뉴욕 고가철로를 건축과 조경을 결합해 공원으로 변신시킨 ‘하이라인’(High Line), 시카고 밀레니엄 공원 루리 가든(Lurie Garden)으로 유명하다. 풀과 꽃들의 생명주기까지 감안한 섬세한 배치가 특징이다.

 이번 파빌리온은 건축과 조경을 하나로 보는 최근 문화 트렌드를 잘 보여준다. 줌토르는 ‘명상을 위한 공간’ ‘정원 속의 정원’이라고 설명했다. 건물 자체가 주인공이 아니라 꽃과 빛으로 채워진 내부 정원의 뒷배경이 되도록 계획했다는 것. 수도원을 연상시키는 검정색 벽으로 도시의 소음을 차단하고, 안에 정원을 만들어 관람객들이 걷거나 앉아서 꽃과 덤불을 응시하도록 했다. 감각적·정서적 체험을 중요하게 여기는 줌토르의 건축미학을 그대로 보여주었다는 평가다.

 줌토르는 재료를 건축의 핵심요소로 활용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번 파빌리온의 벽은 미세한 금속망에 목재를 채운뒤 검정 캔버스 등으로 마감했다. 그는 “내 파빌리온의 중심은 정원이다. 사람들이 이곳에서 자연의 에너지를 충만하게 느꼈으면 한다”고 말했다.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 프로젝트는 올해로 11회째다. 2000년 줄리아 페이튼 존스 관장의 기획으로 시작됐다. 프랭크 개리·자하 하디드 등 내로라하는 건축가들이 설계를 맡으면서 국제무대에서 손꼽히는 건축실험의 장으로 떠올랐다. 기업후원으로만 이뤄진다. 올해는 독일 자동차회사 마이바흐가 참여했다.

이은주 기자

◆피터 줌토르=1943년 스위스 바젤 출생. 뉴욕 프랫인스튜티튜트 졸업. 스위스 하르펜슈타인이라는 작은 마을에 설계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하버드대 건축대학원 초빙교수 역임. 건축 미학은 ‘절제’와 ‘고요’로 축약된다. 돌과 나무, 빛 등 재료의 특성을 명징하게 활용하는 건축가로 유명하다. 소박하지만 자연친화적이고, 사람들이 건축물에 들어갔을 때 받는 느낌까지 디자인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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