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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눈물과 노란 봉투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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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호 31면

무서웠다. “나가! 이 녀석아!” 아버지의 목소리는 컸다. 쫓겨났다. 오갈 데도 없었다. 겁먹은 어린 아들은 사립문을 붙잡고 서럽게 울었다. 옆집 대나무 밭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는 기괴했다. 우우우. 검은 먹구름이 휙 날아갈 때는 솔개가 덮치는 듯 공포에 떨었다. 버럭 화를 내신 아버지는 이내 코를 골았다.

삶과 믿음

아버지의 성질을 부채질할까 봐 숨죽여 있던 어머니는 그제야 동생들을 다그쳤다. “니 형 얼어 죽겠다. 빨리 가서 데려와라.” 동생은 찌푸린 얼굴로 나와서 소매를 끈다. “아부지 주무신다. 빨리 들어가자. 씨이” 우린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방으로 들어섰다. 아버지는 매사가 엄격했다. 한 치의 오차도 용납이 없었다.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아버지의 표정이 그날 마음의 기상 예보였다.

중년이 된 소년은 어느 날, 아버지 방에 들어서다 놀란다. 머무시는 방의 책상 서랍에 숨겨 있던 페트병에 담긴 술 때문이다. 목사인 아들에게 누가 될까봐 몰래 숨겨놓고 술을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중년이 된 소년은 돌아서서 운다.

“아버지, 괜찮아요. 그냥 편하게 드세요. 술 먹는다고 지옥 가는 것도 아니에요.” 목사가 된 아들은 그렇게 소리친다. 한없이 약해져 버린 아버지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위엄 있고 당차던 아버지의 옛 모습이 그리워 운다. ‘아, 아부지!’

장년이 된 아들에게 어느 날 아버지가 전화를 건다. “가족회의를 소집해야겠다.” 초등학교 교장이셨던 아버지는 가족들을 모아놓고 “에∼또”로 시작되는 훈계를 자주 하셨다. 한참 동안 훈시를 하시고는 “마지막으로”하고 톤을 높인다. 자식들은 그게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끝으로”를 몇 번이나 되풀이 하고서야 연설은 끝난다. 오랜만에 그 교탁 위의 연설을 듣게 되다니….

의제가 뭐냐고 묻자 나누어 줄 것이 있어 그렇단다. 어리둥절해하는 아들에게 힘겹게 운을 뗀다. “어려서부터 너희들 못 입히고 못 먹인 게 한이 되었다. 그래서 너희들에게 뭔가 남기고 싶어서…” 몇 마디를 못 하시고는 격한 감정에 우신다. “에∼또”를 생각하던 아들은 당황한다. 얼른 전화를 바꿔 든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이해해라. 니 아부지 마음이 지금 그렇다.”

아버지의 눈물을 본 것은 두 번째다. 아주 어렸을 적, 할아버지의 부음을 들은 아버지는 꺼이꺼이 우셨다. 울음소리는 학교 교정이 떠나갈 정도로 컸다. 철없는 아들은 아버지의 눈물을 닦아줄 생각은커녕 겁부터 집어 먹었다. 몇 날 며칠이 지나 집에 돌아오신 아버지는 한없이 기운이 빠진 힘없는 모습이었다. 처음으로 아버지보다 무서운 것이 죽음이라는 걸 알았다.

그러고는 아버지의 눈물을 본 일이 없다. 그런 아버지가 울고 계셨다. 아들도 따라 운다. 고함소리에 겁먹어 흘리던 눈물이 아니다. 약해진 아버지 때문에 우는 눈물도 아니었다. 그냥 아버지를 따라 울고 싶었다.

며칠 뒤, 아들은 노란 서류봉투를 받아 든다. 증여세 신고서와 함께 아들에게 3000만원, 손자에게 2000만원을 통장에 입금한다는 서류였다. 스물다섯 살부터 56년 동안 모은 돈이었다. 적금을 들었다. 계도 했단다. 사채로 빌려줬다 왕창 떼이기도 했단다. 아버지가 건넨 것은 돈이 아니라 처절한 삶의 투쟁사였고 인간 승리의 초상화였다.

아버지의 특별한 이력서를 받아 든 아들은 이번엔 울지 않는다. 대신 두 주먹을 불끈 쥔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아, 아부지. 사랑합니다.’
오늘따라 하늘이 높고 푸르다. 소리치고 싶다. “나도 아버지다.”



송길원 가족생태학자. 행복발전소 하이패밀리 대표로 일하고 있다. 트위터(@happyzzone)와 페이스북으로 세상과 교회의 소통을 지향하는 문화 리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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