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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프로 5명 중 1명 9단 … ‘바둑 신’ 넘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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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첫 9단은 37년 만에 나왔으나 일명 ‘이세돌 법’ 통과 이후엔 8년간 32명 쏟아져 현재 55명이다.


‘정치 9단’ ‘야구 9단’처럼 고수의 상징이 된 9단. 그러나 정작 원조 격인 바둑계는 9단이 너무 많아 골칫거리다. 허영호 8단이 최근 9단으로 승단하며 국내 9단은 무려 55명으로 다른 단보다 월등히 많다. 전체 프로기사 254명 중 22%를 차지하고 있고 프로기사 5명 중 한 명은 9단이다. 9단이 권위를 잃자 단 폐지 주장마저 대두되고 있다. 이름하여 입신(入神)이라 부르는 9단의 역사를 돌아본다.

◆끝내 9단이 못 된 조남철=초단의 별칭은 근근이 지킬 줄 안다는 수졸(守拙)이고 약우(若愚)·투력(鬪力)·소교(小巧)·용지(用智)·통유(通幽)·구체(具體)·좌조(坐照)를 거쳐 입신에 이르게 된다. 일본 막부시대 9단은 ‘명인’으로 불렸고 당대 한 명만이 존재할 수 있었다. 그 자리를 위해 가문과 생명을 걸고 싸웠다.

한국도 초기 승단규정은 엄격했다. 승단대회를 따로 치러 승단을 했는데 4, 5단이면 고단자였다. 9단이 언제 나오느냐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최초의 8단 자리는 1963년 현대바둑의 개척자인 조남철이 차지했다.

그러나 8단이 되면 4, 5단을 두 점 접어야 했기 때문에 이 제도 아래 9단이 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조남철은 자신이 만든 제도를 고치지 않았고 끝내 자력으로는 9단이 되지 못했다.

◆누가 최초의 9단이냐=82년 10월 발군의 실력자 조훈현이 9단으로 승단하며 한국 최초의 9단이 됐다. 프로바둑이 시작된 지 37년 만이었다. 이듬해 4월 김인도 9단이 됐다. 한국기원은 이미 자력으로 승단하기 힘들어진 원로 조남철 8단에게 9단을 줬다. 한국 현대바둑은 조남철-김인-조훈현으로 이어졌는데 9단 승단은 거꾸로가 됐다.

 이창호나 유창혁은 4단 시절 세계를 정복했다. 한국 단은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월등히 강했다. 세계 최강이 된 21세 이창호는 96년 7단에서 9단으로 특별 승단, 최연소 9단이 됐다. 승단이 너무 어렵다는 민원(?)이 계속 제기되면서 규정은 조금씩 완화됐다. 그러나 결정적인 변화는 ‘이세돌’이란 새로운 강자가 등장하면서다.

◆이세돌 법=이세돌은 이미 숱한 대회에서 우승한 실력자였으나 언제부턴가 승단대회에 나가지 않아 계속 3단으로 머물렀다. 1954년 시작된 승단대회는 유구한 역사를 지녔으나 대국료가 없는 대회였고 신세대 대표인 이세돌이 외면하면서 의미가 점차 퇴색했다.

한국기원은 2003년 ‘세계대회 우승에 3단 승단, 국내대회 우승 2단 승단’을 골자로 한 새 제도를 도입했다. 승단대회를 없애고 프로기전 예선전 첫 판으로 대치했다. 이 규정엔 ‘이세돌 법 1호’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그해 20세 이세돌은 LG배 우승으로 6단이 되더니 7월 후지쓰배 우승으로 9단이 됐다.

 어린 9단이 계속 나왔고 9단에 관한 신기록도 계속 이어졌다. 박영훈이 19세 때 9단이 되며 최연소·최단기간 9단 승단 기록을 세웠고 지난해 17세 박정환이 입단 5년 만에 9단이 되며 종전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세돌 법은 노장들의 9단 승단도 편하게 해줬다. 8년간 매년 2승10패만 계속하면 9단 승단이 가능해졌다. 결국 9단의 숫자가 모든 단 중에서 가장 많아졌고 이러한 기현상은 가속화될 전망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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