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끝나자마자 달려옵니다, 학원보다 재미있는 마을학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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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전체가 교육으로 하나가 된 부산 대천마을학교의 아이들은 방과 후 이곳에서 공부하며 논다. 이곳에선 주민이 아이들의 ‘선생님’이다. [황정옥 기자]

대천마을학교·성미산학교·나눔의교실·무지개교육마을 등은 주민이 직접 가르치고 배우는 ‘마을교육공동체’다. 방과후 대부분의 시간을 학원에서 보내는 요즘 아이들과 달리 이곳 아이들은 이웃 아주머니에게서 영어와 가야금을 배우고 친구 아버지와 함께 기타를 치고 운동도 한다. 3년째 마을교육공동체를 꾸리고 있는 부산 ‘대천마을학교’를 찾아가 봤다.

온종일 북적이는 배움터이자 마을 사랑방

부산시 북구 화명2동, 아파트가 즐비한 이 마을에 ‘대천마을학교’라는 간판을 내건 곳이 있다. 40여 평의 작은 공간을 마을 아이들과 어른들이 사이 좋게 나눠 사용한다.

지난달 30일 오후, 기말고사를 마친 10여 명의 아이들이 야구를 하느라 교실은 난장판이었다. 영어와 수학 수업이 있는 날이지만 시험이 끝난 터라 아이들에게 ‘혜택’이 주어진 것이다. 그 옆에서는 엄마 4명이 바느질 수업을 했다. 이 수업은 바느질·염색·요리·공예 등 손재주 좋기로 마을에 소문난 주민 이주희(50)씨가 맡고 있다. 노미애(33·부산시 북구)씨는 “이웃이다 보니 바느질만 배우는 게 아니라 가족 얘기며 살림 고민까지 털어놓는 자리”라고 말했다. 이들에겐 정해진 수업시간이란 게 없다. 아이들 학교 보내고 오전에 모이면 아이들이 집에 돌아올 때쯤에야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때가 되면 점심도 같이 해먹곤 한다.

이날 오후엔 초등학생들이 참여하는 ‘이야기로 만나는 탈’ 수업이 이어졌다. 아이들에게 ‘큰형님’으로 불리는 정승천(어린이희망학교 대표)씨가 전래동화에 나오는 도깨비와 다른 나라 도깨비 이야기를 들려준 후 아이들과 함께 도깨비 탈을 만들었다. 이 수업을 듣는 7명의 학생은 6월 마을잔치 때 직접 만든 탈을 쓰고 풍물패 놀이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곳엔 매주 아이·어른 150여 명이 드나든다.

손재주 많은 동네 주부가 강의를 하는 바느질 강좌에서는 살림 전반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다.

영어·수학부터 텃밭 가꾸기 강좌까지

대천마을학교는 동아리 7개와 강좌 20개를 운영 중이다. 강사의 80% 정도는 마을 주민이다. 이주희씨처럼 평범한 이웃 아주머니·아저씨가 이곳에선 ‘선생님’이다. 저녁시간에는 퇴근한 아저씨들이 성인을 대상으로 강좌를 진행한다. 가야금과 영어·수학을 배우고 있는 예나연(화명초 5)양은 “동네 친구들과 함께 배우고 친구 엄마들이 가르쳐주니까 가족과 지내는 것처럼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15분쯤 떨어진 옆동네에서 이곳까지 오는 김자윤(금명초 5)양은 오카리나·요리 등 5개 강좌를 듣는다. 김양은 “학원보다 자유롭고 아는 친구들과 어른들이 많아 멀지만 계속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예양과 김양은 여섯 살 때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만나 지금까지 자매처럼 지낸다. 과목당 3만~5만원인 수업료는 강사비로 쓰인다. 경제공동체나 텃밭 가꾸기 등의 마을문화강좌는 무료로 진행되는데 30여 명의 주민이 참가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과목당 수업료 3만~5만원

대천마을학교는 1999년 공동육아로 출발했다. 이귀원(51) 교장은 “육아 고민을 하던 가족들과 협동조합을 만들어 어린이집을 운영하다 아이들이 크면서 방과후 학교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주민 호응이 커지자 2008년 평생교육의 의미를 더해 마을 배움터로 만들었다. 학교 운영비는 대부분 후원금과 교육비로 충당한다. 이 교장은 “마을교육공동체의 역사가 길고 규모가 큰 일본과 유럽의 경우 지자체나 정부의 지원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9년부터 아름다운재단이 지역공동체를 위한 지원사업을 하고 있다. 마을교육공동체가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상당수가 공동육아에서 출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교장은 “공동육아를 통해 더불어 사는 즐거움을 알면 마을교육공동체를 운영하기가 한결 쉽다”며 “내 부모와 이웃들로부터 아이들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부산=박정현 기자
사진=황정옥 기자

▶마을교육공동체 연락처

대천마을학교 051-363-2199, 무지개교육마을 02-3679-7778, 성미산학교 02-3141-0507, 청학동마을공동체학교 나눔의 교실 032-833-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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