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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알바 지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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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외국어를 축약하는 데 일본이 으뜸이다. 편의점이란 뜻의 ‘콤비니’는 영어 ‘컨비니언트 스토어’를 줄인 것이다. 빌딩은 ‘비루’다. ‘딩’이란 발음은 아예 뺐다. 종종 맥주를 뜻하는 ‘비루’와 헷갈리는 이유다. ‘바이토’는 노동을 뜻하는 독일어 ‘아르바이트(Arbeit)’를 줄인 거다. 이것만은 우리가 더 간명하다. 바로 ‘알바’다.

‘아르바이트’는 전후 독일에서 학비를 버는 일이란 뜻으로도 쓰이게 됐다. 폐허 속에서 제대로 공부할 수 있겠나. 휴학하는 학생이 늘자 대학과 정부가 시간제 일자리를 구해준다. 교육은 국가의 백년대계인 것이다. ‘라인강의 기적’ 이후 시간제 용돈벌이로까지 의미가 확장됐지만.

 우리에겐 고학(苦學)이다. 학비를 스스로 벌면서 고생해 배운다는 뜻이다. 일본 강점기에 성행했나. 1923년 신문에 ‘고학을 목적하고 일본으로 오시려 하시는 여러 형님께’란 글이 보인다. 내용인즉, “신문배달은 조석간을 배달하고 이십원 내외. 밥 사먹고 나면 오륙원으로 근근이 학비는 조달할 수 있다. 우유배달은 먹고 6~7원이지만 아침저녁으로 일하니 복습이나 예습할 시간이 없다. 변소소제는 집마다 10~50전을 주지만 창피와 모욕이 말로 다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력거는 한 달에 10여 차 하면 학비는 되나 “단잠을 못 자고 학교에 간들 강의가 뇌(腦)에 들어갈 이치가 있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고학(苦學)에 고(苦)는 있어도 학(學)은 없다”고 했다.

 6·25전쟁 이후도 마찬가지다. 당시 신문에 1959년 입학해 1965년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한 전쟁고아 이야기가 실렸다. 신문팔이·구두닦이를 전전하다 고려대에 입학해 서대문 호떡집에서 빵을 굽고 점심은 굶어가며 졸업했다는 감동 스토리다. 1969년 미국의 국제교육연구소가 파악한 한국 유학생 수는 3765명. 이 가운데 64%가 대부분 ‘접시닦이’ 고학생으로 파악됐다.

 ‘알바 천국’이란 구직 알선업체가 호황이란다. 하지만 실제는 ‘알바 지옥’이다. 구하기도 어렵지만 시간급도 짜다. 등록금 충당하기조차 어려워 ‘청년 백수, 만년 빚쟁이’ 신세다. 여전히 고(苦)는 있지만 학(學)은 어렵다. 독일 아우슈비츠는 ‘아르바이트는 자유를 준다(Arbeit Macht Frei)’고 했지만, 자유는 없었다. 젊음에게 주경야독(晝耕夜讀)이 아니면 야경주독(夜耕晝讀)의 의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알바’가 희망 없는 ‘젊음의 수용소’가 돼선 곤란하다.

박종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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