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후원 프로젝트 ④ 안철수 교수가 ‘컴퓨터 신동’ 김동선군에게 답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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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이전에 미국 백신회사에서 안철수연구소를 무려 1000만 달러에 인수하겠다고 했는데 거절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무리 큰 금액이라도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보호와 직원들에 대한 책임감 앞에서는 수용조건이 되지 못했습니다. 현실감각이 부족한 편이라 꿈을 먹는 ‘이상주의자’라는 얘기를 듣게 되었지만 말입니다.”

본지 6월 29일자 24면.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인 안철수(49) 교수는 한국디지털고교 2학년 김동선(16)군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안 교수는 최근 설문조사에서 20~30대 직장인이 원하는 멘토 1위에 뽑혔다. 비록 천천히 전진하지만 원칙과 정의를 지키려는 그의 행보가 젊은이들에게 귀감이 된 것이다. 제2의 안철수를 꿈꾸는 김군은 멘토가 되어 달라는 요청과 함께 e-메일에 담은 질문에 안 교수가 A4 용지 넉 장에 달하는 장문의 답장을 보내왔다. <본지 6월 29일자 24면> 다음은 김군과 안 교수의 지상 대화다.

 -의사에서 백신 전문가로, 또 학생에서 교수로 커리어(경력)를 전환하면서 원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런 힘은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의미 있는 일, 재미와 열정을 유지할 수 있는 일, 내가 실제로 잘할 수 있는 일. 이 세 가지가 저를 전진하게 하는 힘(Driving force)입니다. 백신 전문가는 당시 우리나라에 저밖에 없었으니까 의미가 있었어요. 7년 동안 의사 일과 병행하느라 매일 3시에 일어났지만 정말 재미있어 피곤한 줄도 몰랐습니다. 창업한 지 10년 되던 해엔 한 회사가 아니라 벤처업계 전반의 성공확률을 높이기 위해 내가 쌓은 경험과 지식을 나누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했지요. 유학 후 대학에 자리를 잡은 것은 그 때문입니다.”

 -교수님이 생각하는 성공이란 무엇인가요.

 “삶의 흔적을 남기는 것입니다. 내가 죽은 후 내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와 다른 것이 이 세상에 남았으면 합니다.”

 김군은 해킹 대회에서 실력도 인정받고 ‘보안전문가’란 꿈도 확실하지만 여느 고등학생처럼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다. 안 교수가 몸담았던 KAIST에 입학할 계획이지만 성적과 컴퓨터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고 싶다. 안 교수는 “그래도 학업이 우선”이라고 답했다. 컴퓨터는 기초과학을 기본으로 하는 응용학문이고, 정보기술(IT) 업계의 최신 동향을 알려면 영어에 능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공부에 있어서 만큼은 괴롭게 고생하지 않으면 실력이 늘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최고경영자(CEO)를 사임하고 편한 연구직이나 교환교수가 아닌 MBA 과정을 밟은 것도 실력을 쌓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윤리의식’을 갖추는 것도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안 교수는 “지식과 기술 수준이 높아질수록 제대로 사용하면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지만, 잘못 사용하면 범죄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김군이 마지막으로 “초심을 잃지 않고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안 교수는 의사 시절 얻었던 깨달음을 전했다.

“세포가 살아있기 위해선 불균형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세포는 살기 위해서 끊임없이 세포 안으로 들어오는 소금을 밖으로 퍼냅니다. 영원한 안정은 죽음 뒤에야 찾아옵니다. 세포나 생명, 그리고 인생의 본질이 불안정이란 것을 받아들인다면 왜 끊임없이 도전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김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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