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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in Europe (중) 문화장벽을 넘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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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 중인 K-POP 전문 댄스 팀 ‘아프리카지안(Africazian)’. 애프터스쿨의 히트곡 ‘너 때문에’의 댄스를 선보이고 있다. “K-POP 팬이 조금씩 늘고 있지만 아직까지 파리 중심가 클럽에선 K-POP 음악을 쉽게 들을 순 없다”고 했다.


지난달 초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SM타운’콘서트는 한국인에겐 낯선 풍경이었다. 문화강국으로 통하는 프랑스가 한국 가수들에게 보여준 뜨거운 열기는 분명 새로운 현상이었다. 파리의 대형 공연장에서 이틀간 1만4000명의 관객을 끌어들인 것만으로도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길 수 없는 ‘사건’임에 틀림 없었다.

 그로부터 꼬박 2주일 뒤인 지난달 24일 파리를 찾았다. 때마침 파리 한국문화원에서 현지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 강좌의 종강 파티가 있는 날이었다. 곳곳에서 더듬대는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는 프랑스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날 한국어 강좌 졸업생들은 한국 전래동화 ‘별주부전’을 소재로 인형극을 꾸미기도 했다.

 3년 전 시작된 이 강좌는 최근 들어 부쩍 인기가 늘었다. 300명 정원에 1000명 가까운 수강생이 몰릴 정도로 경쟁률이 치열하다. 문화원 관계자는 “프랑스에서 K-POP이 인기를 끌면서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프랑스는 한국 대중문화에 푹 빠져든 것일까. 한국어 강좌 종강 파티에서 만난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샤를로트(33)는 “한국 드라마와 음악 모두 강점이 많지만 아직까지는 소수가 즐기는 마니아 문화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문·TV 등 주류 미디어가 주목해야 프랑스 대중들이 널리 즐기는 문화로 인식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SM타운’ 콘서트의 성공 이후에도 프랑스 주류 언론은 K-POP을 주요 이슈로 다루지 않고 있다. 공중파 TV의 음악 순위 프로그램에도 ‘포프 코렌(Pop coreenne·한국 대중음악)’은 아직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물론 ‘SM콘서트’ 직후 르몽드·르피가로 등 주요 신문이 이를 기사로 다루긴 했다.

 하지만 두 기사는 각각 도쿄·서울 특파원이 쓴 것으로, 한국 대중가요가 유튜브·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확산된 과정과 한국 정부의 역할 등을 소개한 것이었다. 문화현상을 분석한 기사라기보다 사회현상을 단순 전달한 기사에 가깝다는 얘기다. 사실 프랑스 주류 매체는 문화 영역에 관한 한 벽이 높은 편이다. 실제 미국 힙합그룹 블랙 아이드 피스(Black Eyed Peas)는 지난달 말 8만석 규모의 파리 스타디움 콘서트를 사흘간 매진시켰지만, 리베라시옹 등 주요 신문의 문화면에는 2단 박스 기사 정도로만 게재됐다. 샤를로트는 “프랑스 주요 언론은 모든 문화에 대해 열려있는 편은 아니다. 문화 전문 저널리스트의 경우 예술성을 가장 큰 기준으로 삼는데 한국 아이돌 가수는 아직까지 예술적인 면에서 불충분하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고 했다.

 프랑스에서 한국 대중문화를 즐기는 팬들의 문화는 이제 막 출발선을 떠났다. 지난해 프랑스팬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한국 드라마 포럼’은 회원수가 8000명을 넘어섰고, 올 초엔 K-POP을 전문적으로 방송하는 인터넷 라디오 방송도 개국했다. 파리에서 열렸던 ‘SM타운’ 콘서트에 쏟아진 열기는 이제 막 형성되기 시작한 팬문화가 응축돼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2002년부터 K-POP을 즐겨 들었다는 수엘라(25·간호사)는 “프랑스의 일반 대중들은 K-POP 가수를 1990년대 중반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보이 밴드처럼 바라보고 있다. 독특한 퍼포먼스 등 90년대 보이 밴드를 뛰어넘는 강점을 잘 전달한다면 주류 미디어도 충분히 주목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파리=글·사진 정강현 기자

“한국 음반사 직접 진출하면 K-POP 확산 빨라질 것”

K-POP FM 운영 니콜라 보노코르

올 1월 프랑스에 K-POP 전문 인터넷 방송인 K-POP FM(http://kpopfm.fr)이 개설됐다. 하루 평균 1만 명 넘게 접속하는 인터넷 라디오 방송이다. 주로 한국 아이돌의 음악을 실시간으로 틀어준다. 최근 프랑스에 불고 있는 K-POP 열풍을 뒷받침하는 방송이라 할 수 있다.

 이 방송 운영자 니콜라 보노코르(23·사진)를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만났다. 그는 “K-POP의 확산 속도는 J-POP(일본 대중음악)에 비해 훨씬 빠르지만 아직은 ‘앙구망(engoument·열광)’ 단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K-POP의 잠재력으로 볼 때 한국의 음반 회사들이 직접 프랑스 시장에 진출한다면 붐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제안했다.

 -한국 음악 방송을 개설한 계기는.

 “J-POP을 좋아하다가 K-POP에 대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다. 2007년 J-POP 방송을 열었고, 프랑스에 K-POP 팬들이 슬슬 생겨나는 걸 보고 올 초 K-POP 방송도 열게 됐다.”

 -현지에서 K-POP의 인기는 어느 정도인가.

 “열광이 시작된 단계다. 하지만 전파 속도가 매우 빨라 주목하고 있다. J-POP 방송의 경우 4년간 운영했는데 한달 평균 18만 명이 접속하는데, K-POP 방송은 운영한 지 4개월 만에 한달 평균 이용자가 21만 명에 달한다. 프랑스 대중들에게 확산될 수 있는 토대는 마련됐다고 본다.”

 -프랑스에서 K-POP이 인기를 끈 배경은.

 “프랑스인은 커뮤니티를 꾸리는 걸 좋아한다. 서로 좋아하는 것을 공유한다. 일본 문화에 관심 있던 프랑스인이 한국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인터넷을 중심으로 K-POP 동호회 등을 꾸렸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조금씩 확산되기 시작했다.”

 -한국 음악의 강점과 보완점은.

 “적극적인 팬 마케팅이 돋보인다. J-POP 인기는 예전부터 있었지만 일본 가수들이 적극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SM타운’ 콘서트에서 보듯, 한국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은 팬들의 작은 반응에도 적극적으로 호응한다. 한국 음반 회사들이 프랑스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해야 한다. 그러면 K-POP 붐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르세유= 글·사진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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