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미국의 힘 보여준 게이츠 장관의 영예로운 퇴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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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그는 겸손한 애국자이며, 상식과 품위를 갖춘 가장 훌륭한 공복(公僕) 중 한 명이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최고의 찬사와 최상의 예우로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을 떠나보냈다. 지난달 30일 펜타곤(미 국방부 청사)에서 거행된 게이츠 장관의 퇴임식에서 오바마는 “2008년 (정권교체) 당시 얼마든지 은퇴할 자유가 있었지만 그는 남아서 봉사했다”며 “이는 당파성보다 국가에 대한 헌신과 시민의식을 앞세운 결정이었다”고 게이츠에게 공을 돌렸다. 또 미 대통령이 민간인에게 주는 최고 영예인 ‘자유의 메달’을 수여했다.

 게이츠는 정파가 다른 두 정부에서 연속해서 봉직한 미 최초의 국방장관 기록을 남겼다. 공화당 출신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에 의해 국방장관에 임명돼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이 시작한 두 개 전쟁의 뒤치다꺼리를 맡았다. 4년7개월간 그는 현실주의에 바탕을 둔 실용적 접근법으로 주어진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함으로써 당파를 초월해 국가에 봉사하는 공직자의 모범을 보였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오바마의 정치적 포용력이었다. 지난 정부에 봉직했더라도 국가를 위해 필요하다면 기꺼이 손을 내미는 오바마의 초당적 리더십과 열린 자세가 전제되지 않았다면 ‘미 역사상 가장 성공한 국방장관’의 영예는 게이츠에게 돌아갈 수 없었다. 정권이 바뀌면 지난 정권 사람들은 무조건 배척하고, 모조리 자기 사람들로 채우는 속 좁은 리더십으로는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이츠는 오바마의 기대에 부응하면서도 할 말은 하는 소신 있는 태도로, ‘변절자’란 일각의 비판도 잠재웠다.

 대통령과 공직자는 당파를 떠나 한 배를 탄 같은 국민이다. 그럼에도 화성과 금성에서 온 사람들처럼 서로를 백안시하고, 편을 가른다면 성공적인 국정은 기대하기 어렵다. 정권이 바뀌기가 무섭게 새로운 줄서기가 고질병처럼 되풀이되는 풍토에서 성공한 공직자는 나올 수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지도자의 자질이고, 리더십이다. 미국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지만 게이츠의 영예로운 퇴임에서 우리는 아직 시들지 않은 미국의 힘을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