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독·해열에 식욕 자극 … 녹두는 식품의 ‘작은 거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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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호 15면

지난 6월 독일에서 시작된 병원성 대장균 사건이 좀처럼 진정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원인 식품으로 초기엔 스페인산(産) 오이, 최근엔 독일산 콩싹(bean sprout)이 지목된다. 콩싹은 강낭콩(kidney bean)·녹두(mungbean)·대두(soybean)의 싹이 모두 가능하다. 서양인은 우리만큼 콩나물을 즐기지 않으므로 녹두나물에 혐의를 두는 것 같다.

박태균의 식품이야기

녹두는 따뜻한 날씨를 좋아하는 아열대성 식물이다. 전남이 국내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음력) 오뉴월 녹두 깝대기 같다”는 속담도 있다. 신경질적이어서 건드리기만 하면 톡 쏘는 것을 가리킨다. 여름에 잘 익은 녹두 꼬투리를 건드리면 껍질이 터지고 알이 튀어나오는 것을 빗댔다.
녹두는 이름처럼 고운 초록색 곡류다. 콩과에 속하며 다 자란 키가 65∼80㎝로 벼보다 작다. 동학운동 선봉장이던 전봉준의 키가 유난히 작아 ‘녹두장군’으로 불렸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영양적으론 고탄수화물(마른 것 100g당 62g)·고단백질(22.3g)·고칼슘(100㎎) 식품이다. 영양소 구성이 팥과 비슷하다.

녹두로 만든 대표 음식은 녹두죽·녹두지짐·녹두묵·탕평채·녹두나물이다.
조상들은 독감에 걸려 입맛이 떨어지고 열이 심하거나 과음(특히 소주)한 뒤 술독을 풀기 위해 녹두죽을 먹었다. 한방에선 노폐물·술을 해독하고 열을 내리며 식욕을 돋워 주는 약성이 있다고 본다. 죽 만들 때 껍질을 벗긴 녹두를 사용하면 건강상 손해다. 항산화 성분인 플라보노이드가 껍질에 50% 이상 들어 있기 때문이다.

녹두지짐은 귀한 사람을 대접하는 음식이라 하여 빈대떡, 가난한 사람이 먹는다 하여 빈자떡이라고 불렀다. 대개 돼지고기와 함께 지진다. 녹두에 부족한 메티오닌·트립토판(아미노산) 등을 돼지고기가 보충해줘 ‘환상의 콤비’가 된다.

녹두묵(청포묵)은 집에서 직접 만들었다. 녹두를 물에 하룻밤 동안 불려둔다→야들야들해진 껍질을 벗긴 뒤 물을 조금 붓고 곱게 간다→간 녹두를 고운체에 거른 뒤 가라앉혀 녹말(전분) 앙금을 얻는다→녹말에 물을 작작하게 붓고 솥에서 끓인다(주걱으로 저어 굳지 않게 한다)→끓인 녹말을 그릇에 펴 굳힌다 등 5단계를 거치면 녹두묵이 완성된다.

탕평채는 늦봄∼여름에 즐길 만한 음식이다. 채 썬 녹두묵·돼지고기(쇠고기)·미나리·녹두싹·물쑥 등을 그릇에 담은 뒤 간장·참기름·식초로 버무리고 그 위에 황백지단·김·고추를 가늘게 채 썬 고명을 얹어낸 음식이다. 조선의 영조가 사색당파의 인재를 고루 등용하는 탕평책을 논할 때 첫선을 보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시루에 녹두를 담고 물을 부어 콩나물처럼 싹이 나게 한 것이 녹두나물이다. 대중에겐 숙주나물이 더 익숙하다. 숙주는 조선 초기의 학자 신숙주에서 유래했다. 그가 세조(수양대군) 편에 서자 숙주나물로 개명됐다는 설이 있다. 변절을 여름에 잘 쉬는 녹두나물에 빗댄 것이다. 그가 평소 녹두나물을 즐겼고 이를 안 세조가 녹두나물을 숙주나물이라 부르라고 지시, 오늘에 이르렀다는 상반된 얘기도 전해진다.

술 마신 뒤 해장음식으로도 유용하다. 숙취 해소를 돕는 성분인 아스파라긴산이 콩나물 못지않게 들어 있어서다(전남농업기술원 김동관 연구사).

가정용 재배기를 사면 집에서도 녹두나물을 쉽게 길러 먹을 수 있다. 마트에선 두 개의 떡잎이 마주보지 않고 약간 틀어져 있는 것은 피한다.

한방에선 녹두는 몸을 차게 하는 힘이 강하므로 혈압이 낮거나 냉증이 있는 사람은 과다 섭취하지 말라고 지적한다. 또 한약을 복용할 때 녹두를 먹으면 약효가 줄어든다(해독작용이 너무 커서)고 본다. 동의보감엔 “녹두로 베개를 만들어 베면 눈이 밝아지고 두통이 사라진다”고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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