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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Novel] 대장경 천년 특별기획 김종록 연재소설 - 붓다의 십자가 (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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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용규 buc0244@naver.com

“왜 대답이 없느냐?”

내가 머뭇거리자 수기 스승이 물었다. 도감 사무소 스님들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처음부터 수기 스승과 동행하는 것만 생각했지 내가 현장조사를 주도하게 되리라고는 몽상조차 하지 않았었다. 내겐 너무 벅찬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김승이라는 그 불순한 자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정보 없는 어두운 힘은 두려움과 통한다. 그 두려움은 호기심을 능가했다.

“아, 알겠습니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렸다. 정말 꺼림칙하다. 그자 때문에 얼마 전 밟았던 죽음의 문턱이 떠올랐다. 경교문헌을 찾으러 갔다가 당한 끔찍한 일이다. 때마침 구세주처럼 나타난 거지왕초와 고려인 기마대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구했지만 이렇게 어깨뼈가 부러졌다.

“경교문헌은 흔량매현 각수장이 마을에서 보다 자세히 볼 수 있을 것 같구나. 김승이라는 자가 왜 이런 돌발적인 행위를 한 것인가도 곧 밝혀지겠지. 화엄경 변상도를 십자가로 더럽힌 건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야. 필요하다면 전주 계수관의 도움을 청해라.”

수기 스승이 내 호기심과 의협심을 자극했다. 나는 의자에 앉아 있던 도반들 가운데 천기 승록(僧錄)의 안색을 살폈다. 천기 스님은 대장도감 안에서 수기 스승 다음으로 불경에 정통한 실력자였다. 스승이 천기 스님 대신 나를 택한 건 십여 년 젊은 나이와 함께 호기심을 고려해서였을 게다.

“지밀 승정! 이참에 경교, 그 밝은 빛의 종교에 대해서 회통을 쳐 보거라.”

이마가 툭 나불거진 천기 스님이 내게 일렀다. 도반들 가운데 경교 판화를 펼쳐 보는 이들이 있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사내의 그림이 보였다.

경교, 밝은 빛의 종교라고? 내 선입견은 매우 부정적이다. 지금으로선 어둡고 칙칙한 사교집단으로만 보인다. 이 참혹한 전란 중에 총력을 기울여 해오고 있는 고려국 국책사업이 대장경 다시 새기기다. 이 마당에 웬 엉뚱한 마리아와 이수 그림 이야기를 끼워 넣어서 사람 입장을 이처럼 난처하게 만드는 것인가.

“김승이라는 자가 어쩌면 남해 분사도감 경판도 새겼을지 몰라. 거기에도 장난을 쳤는지 꼼꼼히 확인해라.”

“예? 올라온 인경본(印經本)에서 확인하셨잖습니까?”

“얼마든지 다른 장난을 칠 수 있는 자야. 중요한 일이다. 언제 떠나겠는고?”

“남해까지요?”

“물론이지.”

“어깨뼈만 아물면 떠나겠습니다.”

나는 봉긋한 오른쪽 어깨를 왼손으로 짚어 보였다. 아직 덧대 놓은 부목을 떼지 않은 상태라서 그렇게 먼 길을 떠나는 건 무리였다. 솔직히 시간을 벌어주는 아픈 어깨가 고마웠다. 그만큼 이번 파송이 막막하고 내키지 않았다. 태산처럼 넉넉하고 북극성처럼 영명한 표지가 수기 스승이었다. 그런 스승과 함께하는 모험이라면 세상 끝까지 가더라도 두려울 게 없었다. 하지만 스승 대신 그 불퉁거리는 인보라니 차라리 혼자 가는 게 더 나았다.

 “남해 분사도감 먼저 들러보고 흔량매현 김승의 공방에 가거라.”

“예.”

“천기 승록!”

수기 스승이 호명하자 대장도감 제2인자인 천기 스님이 두루마리 뭉치를 내 앞에 펼쳤다. 멀리 남해 분사도감에서 판각한 경판들을 인쇄해 올려 보내온 것들이었다. 남해 분사도감에서는 경판 대신 그 증거로 인경본만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보다시피 조잡하기 짝이 없는 인경본들이야. 다시 새기게끔 조치하도록.”

“알겠습니다.”

“남해에는 진양 수령을 지냈던 정안(鄭晏) 처사가 총책임자다. 만나보면 해결책이 찾아질 게야. 나는 지밀 승정보다 먼저 길을 나서서 공산 부인사와 가야산 해인사 일대를 둘러볼 참이야. 이곳 판당에 모셔진 경판들이 뒤틀리고 있는데 해인사 판당은 무탈한지 모르겠어.”

바닷길로 여행하게 될 나와 달리 천기 스님은 험준한 내륙여행을 해야 한다. 천기 스님의 여로는 지난 제2차 몽골 침입 때, 공산 부인사 장경각에 불을 싸질렀던 적들이 밟았던 길이기도 했다.

“공산 부인사에 가신다고요?”

“판당이 있었던 자리 지세를 보려는 거네.”

새로운 판당 자리를 물색하고 있는 수기 스승의 지시가 있었던 듯했다. 나는 검은 기억 속을 더듬었다. 머릿속이 잉걸불처럼 이내 새빨개졌다. 그랬다.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그해 겨울, 나는 공산 부인사 암자에서 노스님을 시봉하고 있었다. 당시 스물세 살이었던 나는 눈만 뜨면 닥치는 대로 불경을 읽어치웠다. 속가에서 일찍부터 공자와 맹자를 찾던 독서편력을 불경으로 바꾸고 뼛속까지 우려내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소리 내 읽고 또 읽었다. 부처의 혀는 과연 길고 넓었다. 그의 장광설은 끝이 보이지 않게 이어졌고 비유는 현란했다. 소리 내 읽다 보면 경전 속에서 곧잘 길을 잃었다. 생각을 분석하고 이론을 분석하고 결국은 모든 걸 해체해야 길이 찾아졌다. 마음 심(心)자나 없을 무(無)자 혹은 빌 공(空)자가 나침반이었다. 길 잃은 자리에서 그 나침반을 붙들고 다시 출발한다. 언어에 의존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진리, 언어를 떠난 자리에서 찾아지는 진리가 하나일 수는 없다. 그렇다고 둘이어서도 안 된다. 그렇다면 어쩌란 말인가. 쇠를 불에 달구고 물에 식히는 작업 같은 것, 그런 담금질과 반복되는 훈련을 통해 만들어진 순금 같은 몸과 마음자리를 유지할 것! 그런데 그것도 허상이다. 끝내는 흙과 물과 불과 바람으로 흩어지고 말 것이기에.

불이다.

뜰 앞에 쪼그려 앉아 햇볕을 사냥하던 노스님이 꿈결처럼 두런거렸다. 『중론(中論)』의 언어유희 숲에 빠져 있던 나는 벌로 들어 넘겼다. 너무 늙은 스님의 무의미한 넋두리로 여겼다.

불꽃바다다.

노스님의 어법이 강렬해진다. 그런 언어부터 해체해야 한다. 불을 어찌하여 꽃이라 하고 그 허상의 꽃이 어떻게 바다가 될 수 있는가. 바다는 물이다. 그것도 짠 소금물이다. 코끝이 맵다. 진짜 불인가? 방문을 열쳤다. 암자 바로 아래에서 자욱한 연기가 일어났다. 언뜻언뜻 화염이 비쳤다. 공산 일대는 이미 불바다였다. 불은 정말 바다가 될 수 있었다. 현상계는 늘 변덕스럽다. 나는 읽던 경전을 내던졌다. 산불에 쫓겨 허겁지겁 짐을 꾸린 나는 노스님의 손을 잡고 뒷산을 넘었다. 멀리 우회하여 부인사를 다시 찾았을 때는 경내에 검은 잿더미에서 모락모락 훈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숯 검댕이 얼굴을 한 대중 스님들이 참회진언을 외웠다. 대장경이 불타버렸다. 진리의 말씀들이 검은 재가 되어버렸다. 불을 끄려던 많은 스님들과 사하촌 농민들이 불에 타 죽었다.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르고 북쪽으로 내빼버렸다는 간악한 오랑캐들!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몽골군들을 저주했다.

나는 그날 그랬던 것처럼 입술을 깨물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돌이켜보니 어렸을 적부터 참, 못 볼 걸 너무 많이도 보며 살아왔다. 초조대장경을 모셨던 절집에 살다가 이렇게 강화도 대장도감에 불려와 재조대장경 사업을 맡고 있으니 그것도 묘한 인연이다.

 “정안 처사에게는 내가 서찰을 써줄 것이야. 예전에 너도 두어 번 봐서 알겠다만 워낙 신심이 깊고 공부가 높은 분이라서 뒷배를 잘 봐줄 게다.”

나를 안심시킨 수기 스승은 처소로 돌아갔다. 나는 천기 승록을 모시고 몇몇 도반들과 뒤숭숭한 정국에 대해서 난상토론을 벌였다. 몽골군이 강화도를 안 건너는 이유, 최이 집정 사후의 권력구도, 경교에 대해서 아는 것들을 낱낱이 펼쳐놓으며 소론을 펼쳤다.

“수기 도승통께서 지밀 승정을 끔찍이 아끼는 이유를 알겠어. 명문가 출신이라 인맥도 좋고 상황을 인식하고 분석하는 눈도 남달라.”

“맞아. 우리와는 격이 달라.”

누군가 면전에서 입에 발린 찬사를 늘어놓자 초를 치는 분위기였다. 나는 그 찬사가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나를 험난한 사지로 내몰기 위한 책략쯤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자의식일 수 있었다. 수기 스승이 설마 그런 의도로 나를 파송하겠는가. 어쨌거나 이미 결정된 일이었다. 대장도감에서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이었고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옳았다. 그렇다. 이번 파송에 수기 스승은 없다. 오직 내가 있을 뿐이다. 의지하던 마음부터 잘라내 버려야 한다.

“천하에 둘도 없는 진선진미(盡善盡美)한 대장경이 되도록 반드시 바로잡고 올 겁니다.”

나는 천명했다. 그러고 나니 두려움이 싹 가셔버리는 것이었다. 역시 세상사는 마음먹기에 달렸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 『대장목록』 교정 작업에 매달렸다.

천기 스님이 먼저 떠나고 이레가량 뒤, 더리미 선착장에서 전갈이 왔다. 남해를 거쳐 왜국으로 가는 상선 한 척이 곧 뜨게 되리라는 정보였다. 선원사 대장도감은 나와 인보, 말 두 필의 자리를 확보하고 뱃삯을 치렀다. 어깨 부위 상처는 겉으로 보기에 말끔해졌다. 뼈가 제대로 붙은 것 같았지만 조심하기로 했다.

남해로 떠나기 전날, 나는 왕식 태자 전하를 뵈려 궁궐로 찾아갔다. 여느 때처럼 궁궐 바로 못미처 격구장을 지나쳤다. 격구장은 텅 비어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날마다 휘황찬란한 깃발이 나부끼고 금술로 장식한 말들이 뛰던 격구장이었다. 이곳에서 내지르던 무인들의 환호성은 궐내까지 넘실댔었다. 나는 집정 최이, 최항, 최의 삼대의 놀이터에 흐르는 정적에서 이지러져 가는 달빛 냄새 같은 걸 맡았다. 낮달을 말하는 게 아니다. 벌건 대낮에 기울어가는 달빛 냄새를 맡은 건 매우 역설적이다. 그것은 무인천하가 머잖아 종식될 것 같은 예감이기도 했다. 내 생전에 정말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싶지만 해와 달 아래서 영원한 건 없는 법이다.

집정 최이는 여전히 사경을 헤매고 있고, 최항은 괴물처럼 털고 일어나 집정 대리 직무에 여념이 없었다. 뒤늦게 글을 익히고 높은 지위에 맞는 격식을 갖춰나가고 있었지만 최항의 주변에는 무뢰배들로 넘쳐났다. 게다가 거칠 것 없는 계집질로 사람들의 빈축을 샀다. 초파일 연등회 때 사고를 쳤던 비구니를 측실로 들인 일은 천하의 웃음거리였다.

“그 자색으로 차가운 구리 부처를 모신다는 게 말이 되는고. 될 수 있으면 나같이 따뜻한 피가 흐르는 생불을 모셔야지. 자고로 여자는 밑이 빠져서 득도할 수가 없느니. 비구가 지켜야 할 계율이 277개인 데에 비해 비구니 계율은 무려 311개나 되는 까닭을 알아채야지. 오늘부터 당장 그 퀴퀴한 먹물 옷 벗어 던지소. 때깔 고운 비단옷을 휘감고 머리를 기르시게.”

측근 호위무사가 별당으로 데리고 들어온 백련 같은 비구니를 최항은 그날 밤 무참히 꺾어버렸다. 부친이 사경을 헤매고 자신도 피부에 염증이 번졌거늘 아랑곳하지 않았다.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 육욕의 불길은 삼강오륜도 부처님법도 가리지 않았다.

짐승 같은 잠자리 끝에서 한동안 눈물을 뿌리던 비구니가 속삭였다.

“지주사 나리, 들어보셔요.”

“허허허-. 먹물 옷 다시 입겠다는 거 빼곤 다 들어주리라. 어서 말해 보소.”

최항은 파르라니 깎은 비구니의 머리를 자신의 털북숭이 가슴에 올려놓고 매매 쓰다듬었다. 손끝에 닿는 까슬까슬한 촉감이 짜릿짜릿했다. 피부에 생긴 염증의 간지럼도 깨끗이 잊게 해주는 중독적인 촉감이었다.

 “나리께서 부처님 버리게 하고 강제로 취하신 몸이올시다.”

“끄음!”

“오늘부터 나리를 제 부처님으로 모시게 해주셔요.”

“허허허허-. 그건 도리어 내가 부탁할 일이로세. 자네야말로 나 버리고 구리 부처에게 되돌아가면 안 되네. 아 참, 자네 머리는 안 기르는 게 좋겠어.”

횡재를 했다고 여긴 최항은 비구니에게 백련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무식한 최항의 한계가 드러나는 이름이었다. 비구니는 절집이 떠올려지는 이름이라 싫다며 차라리 속가에서 부르던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주문했다. 지양(池楊)이라는 이름이 그렇게 되살아났다. 김씨라는 속가의 성은 지워달라고 했다. 미천한 가문이지만 출가하면서 버린 성씨인 만큼 다시 찾고 싶지 않다며. 이 절색의 얼굴은 희다 못해 푸른 기운이 감돌았다. 최항은 민머리와 볼을 쓰다듬고 어루만지며 어쩔 줄을 몰랐다.

입궐해서 동궁까지 가는 동안 나는 최씨 무인정권의 타락상에 전율했다. 저들과 정반대편에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분이 태자 전하였다. 태자 전하는 내 희망이었다. 무인세력에게 빌붙어 사는 대다수 문인들의 속내는 아직 잘 모르겠다.

태자 전하는 자신이 걸고 있던 은제 금강저 목걸이를 내 목에 걸어주며 무사귀환을 빌어주었다.

“태자 전하, 꼭 바다를 건너세요.”

내 입에서 강녕하시라는 말 대신 왜 그 말이 튀어나왔는지 모르겠다.

“저들이 허락하겠습니까. 거미줄 같은 감시망을 쳐놓고 있는 걸요.”

태자는 의미 깊은 미소를 지었다. 다른 타협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던 지난번의 말씀이 떠올랐다. 나는 태자가 도모하는 일이 반드시 성공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다음 날 물때에 맞춰 말을 타고 선착장에 나갔다. 숭어잡이 배와 상선들이 부쩍 늘어난 선착장은 활기가 넘쳤다. 몽골의 세 번째 황제 구유크칸이 죽은 뒤로 몽골군은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전쟁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어 모처럼 평화가 찾아왔다. 인보와 나는 상선에 올랐다. 어림잡아 한 달가량 걸릴 여정의 시작이었다.

소설가 김종록
일러스트=이용규 buc02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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