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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령’에 집단 반발 … 검찰 초유의 지휘부 공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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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검경 수사권 조정에 항의해 홍만표 기획조정부장 등 대검의 검사장급 간부 5명 전원이 사표를 제출한 29일 밤 대검 청사의 모습. 대검 소속 검사들은 향후 대책마련을 위해 회의를 거듭했다. [강정현 기자]


검찰은 왜 ‘대통령령(大統領令)’에 저항하는 것일까. 29일 홍만표 대검 기획조정부장의 사의 표명 사실이 알려진 뒤 대검 선임연구관과 기획관, 과장급 검사 28명은 오전 11시40분부터 2시간여 동안 긴급회의를 열었다. 결론은 ‘대통령령에 따른 수사 지휘’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 2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검사의 지휘에 관한 구체적 사항은 법무부령으로 정한다’는 형사소송법 개정안 196조 3항 중 ‘법무부령’을 ‘대통령령’으로 수정의결한 데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강찬우·문무일 대검 선임연구관과 이완규 형사1과장은 29일 오후 5시 대검 기자실에 내려와 회의 결과를 전했다.

강 연구관은 “수사 지휘에 관한 구체 사항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은 검사의 지휘체계를 붕괴시키며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어 “관련 부처 합의를 필요로 하는 국무회의의 성격을 고려할 때 지휘를 받는 사법경찰이 원하는 사안만 지휘를 받겠다고 나설 것”이라며 “대통령령으로 정할 경우 검찰의 수사지휘가 무력화되고 정치적 외풍에 흔들리게 된다”고 덧붙였다. 제도가 이상적으로 운영되면 문제가 없겠지만 검사 지휘사항을 규정할 때마다 정치권력이 관여하게 되면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훼손될 수 있다는 논리다. 헌법 제정 이후 반세기 동안 수사 세부절차를 법무부령으로, 재판 세부절차를 대법원 규칙으로 정한 것은 권력으로부터 사법을 분리시켜야 한다는 대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주장도 내놨다.

 이완규 과장은 “어차피 법무부 장관도 대통령이 임명하기 때문에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지만 제도적인 중립성과 사실적인 중립성은 다르다”며 “법무부 장관이 구체적인 수사지휘는 검찰총장을 통해 하도록 돼 있는 것도 이런 제도적 중립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법사위가 검찰 지휘의 구체적 내용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한 것은 검찰과 경찰 어느 쪽 입장에 치우치지 않고 보다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규정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법은 국회에서 만드는 것 아니냐”며 “검찰이 왜 입법부의 결론에 대해 조직적으로 반발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이날 중앙수사부, 기획조정부, 공안부, 형사·강력부, 공판송무부 등 대검의 핵심 부서 장(長)들이 모두 사의를 표명하면서 전국 검찰조직을 지휘하는 대검 기능은 사실상 마비됐다. 대한민국 검찰이 ‘지휘부 공백사태’를 맞은 것이다.

 중수부는 대형 경제·정치사건을 수사하는 대검 수사기능의 핵심이다. 검찰총장의 직접 지휘를 받아 권력층 비리 등 대형 부정·부패 사건을 수사하는 중수부는 ‘대검=중수부’라는 인식이 생길 정도로 대검을 상징하는 부서다. 중수부가 현재 진행 중인 부산저축은행그룹의 비리사건도 자칫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중수부가 전시(戰時)의 핵심 부서라면 기조부는 검찰의 두뇌다. 검찰 업무를 기획하고 법령질의 및 개정건의를 맡는다. 검찰 제도와 정책을 마련하고 대국회 관계를 총괄하는 지휘부인 셈이다. 형사사건과 강력·조직범죄, 마약범죄 사건의 지휘감독을 맡는 형사·강력부와 대공, 선거, 남북문제, 노동사건 등을 관장하는 공안부, 상고·재항고 사건 접수 및 처리와 재산형 집행에 대한 지휘감독 업무를 맡는 공판송무부도 검찰의 핵심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글=이동현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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