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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코치] 아이에게 음식 주기보다 '식육'이 우선

중앙일보

입력

[박민수 박사의 ‘9988234’ 시크릿]

가정의학과 전문의
박민수 박사

스토리온의 소아비만탈출 프로젝트 수퍼키즈 주치의를 하면서 고도비만아동인 수퍼키즈의 어머니들에게 가장 강조했던 부분은 식사를 차려주지 말고 식사하는 법을 스스로 습득하게 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나치게 식단에 집착하는 엄마들에게 '식단제일주의'로부터 벗어나도록 지도하고, 소아식습관 십계명 등의 행동주의적 교육관점을 강조하였다.

한 식품회사 광고에서 등장해 이목을 끈 적도 있지만 서구나 일본에서는 지금 식육이 보편화되고 있다. 식육(食育)이란 글자 그대로 음식을 고르고 먹는 일에 대한 체계화되고 전문적인 교육을 뜻한다. 이는 단지 가정에서 행해지는 가정교육 차원이 아니라, 교육당국과 각종 단체에서 행하는 전사회적인 교육 현안이다.

식육이 중요한 큰 이유는 어린 시절이 한 개인의 평생 건강을 책임질 몸을 형성하는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 영양부족이나 비만을 겪으면 나이가 들어 각종 건강문제를 겪는다. 마치 질병이 생기면 다시 되돌리기 너무 힘든 것처럼, 어릴 때 잘못된 영양으로 몸을 망쳐버리면 평생 건강 농사는 물론 개인의 성취마저도 그르치는 것이다. 어린 시절 고른 영양과 규칙적인 영양공급은 두뇌발달과 성장에 결정적인 성패를 좌우하기도 한다.

특히 어린 시절 비만으로 인해 겪는 영양의 불균형과 부족은 세포 수준, 두뇌의 물리적 완성, 뼈 성장 등과 같은 기초적인 몸의 구조 형성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비만을 앓는 어린이가 있다면 최대한 빨리 정상적인 성장 곡선으로 돌아가기 위해 힘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양에서는 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는 말이 오래전부터 전해지고 있다. 글자 그대로 먹는 것이 곧 약이라는 말이다. 좋은 먹을거리를 제대로 먹기만 한다면 질병에서도 해방되고, 장수를 누릴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대부분의 학습과 습관들이기가 그렇듯 약식동원의 원리도 나이가 어릴수록 큰 효과와 영향력을 발휘한다. 절대적이라고 해야 정답일 것이다.

나찌 장교였던 요제프 멩겔레는 유대인을 대상으로 인체실험을 자행해 일명 죽음의 천사라 불렸는데 그가 가장 아꼈던 실험 대상들이 일란성쌍둥이였다. 똑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도 환경의 변화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 실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혹은 일란성 쌍둥이가 각기 다른 가정으로 입양된 후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둘의 성장을 확인해보니 무려 15cm의 키 차이가 났다는 보고도 있다.

그리고 지난해 한 통계조사에 따르면 남북한 청소년의 평균신장이 평균 15cm 이상 나는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비록 현대적 약물처럼 그 효과가 단숨에 나타나지는 않지만, 꾸준하게 실천하는 바른 음식 섭취는 괄목할 만한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제대로 먹기만 해도 그렇지 못한 아이에 비해 20% 똑똑해지고 30% 더 튼튼해진다.' 알버타대학 폴 보젤러스(Paul J. Veugelers) 교수팀은 건강한 식사를 하는 어린이는 그렇지 못한 식사를 하는 어린이에 비해 학업 성적이 훨씬 좋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에서는 과일과 야채를 많이 먹고 지방 등의 칼로리 섭취량이 적은 어린이는 읽기, 쓰기 평가에서 불합격되는 경우가 매우 적었다. 그밖에도 식육이 커다란 효과를 나타냄을 알려주는 연구나 자료들은 너무나 많다.

부모는 아이와 함께 장을 보고, 함께 음식재료를 장만하고, 요리하고 식사하는 과정에 동참시켜야 한다. 가능하다면 그 재료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음식이 어째서 소중한지를 차근차근 가르치고 좋은 식사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는 정성과 지혜가 필요하다.

또한 현대의 먹을거리는 위험해지고 있다. 각종 첨가물, 영양 불균형, 농약이나 항생제 잔류물 등이 우리를 해친다. 특히 아이들의 입맛을 노리는 나쁜 음식에 주의해야 한다. 마치 아이에게 마약을 권하지 않듯 정크푸드에 대한 금지도 철저해야 한다. 사실 지나친 정크푸드 섭취는 마약과 같은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마저 있다. 정크푸드의 해악에 대해 확실하게 설명하고 아이가 범죄나 부도덕의 잘못을 알게 하듯 정크푸드의 악영향을 이해시켜야 한다. 먹기 싫은 음식을 왜 먹어야 하는지도 확실하게 가르쳐야 한다. 입맛의 간사함을 도모하는 달고 짜고 고소하며 자극적인 음식들이 넘쳐날수록 다소 맛이 떨어지는 먹을거리에 대한 아이들의 반발심은 커지기 때문이다. 이는 머리로, 또 몸으로 친숙하고 익숙해지게 만들어야 한다.

윤리적으로 선한 음식, 슬로푸드, 로컬푸드, 한식의 장점, 음식에 대한 경건함과 같은 보다 본질적인 음식에 대한 이해를 들려주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이는 학교나 사설기관에서는 행할 수 없는 부모의 고유한 가르침 영역이다. 함께 식사하며 왜 이 음식이 너에게 소중한지를 가르쳐야 한다.

수퍼키즈 프로그램이 끝난 뒤 아이들은 자기 체중의 20%-30%를 감량하는 쾌거를 이루었지만 그보다 더 놀라왔던 것은 가끔 이전의 잘못된 식습관으로 회귀하려는 부모님들에게도 이렇게 먹어야 한다는 식사교육을 할수 있을만큼 몸맘뇌가 혼연일체 변신되었다는 것이다.그래서 지금 이 시간에도 대부분 아동들이 지속적으로 체중이 감량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속속 듣게 된다. 어른들이 치료프로그램중에는 곧잘 체중이 감량되다가 프로그램이 끝나면 적지않은 사람들이 이전 몸무게로 회귀하는 '요요현상'을 겪는 것과는 사뭇 다른 광경이다.

아이들이 살아갈 인생이 길고 창창하기에 아이손에 고기를 쥐어주기보다는 그물과 낚시대를 주어 고기를 잡는 법을 일러주어야함이 우리 부모세대의 절대절명의 과제이고 그래서 식육이 새삼 다시 강조되어야 한다.

박민수 가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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