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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직장’ 금융공기업…근무 시간에 주식 투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감사원은 27일 사학연금공단·대한지방행정공제회 등 금융 공기업의 임직원들이 근무시간 중 개인적으로 주식 거래를 한 사실을 대거 적발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에 따르면 사학연금공단의 임직원 57명(전체의 29%)은 최근 2년간 근무시간에 1인당 평균 922회가량 개인 투자 목적으로 주식을 사고 팔았다.

 공단의 주식운용팀장이었던 A씨의 경우 2009년 11월 증권계좌 26억원을 운용해 주는 대가로 친구에게서 4억3000만원을 무이자로 빌렸다. 그는 올 1월까지 총 근무일수의 82.6%인 247일간 하루 평균 27.6회에 걸쳐 주식을 거래해 2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전 채권운용팀장 B씨는 2009년 3월부터 올 1월까지 매일 업무시간 중 평균 51회의 주식 거래를 했다.

 한국수출입은행에서도 전체 임직원 넷 중 한 명(23.7%)꼴인 162명이 근무시간 중 사적으로 주식 거래를 했다. 직원인 C씨는 2010년 8월까지 20개월 동안 모두 3만2704회, 하루 평균 94.5회의 주식 거래를 했다.

 공공기관의 일반 임직원은 ‘임직원 행동강령’에 따라 근무시간 중엔 사적인 주식 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대한지방행정공제회(14명·전체 임직원의 7.6%), 한국산업은행(362명·14.8%), 한국자산관리공사(104명·10%)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적발됐다. 지방행정공제회의 감사팀장은 근무시간에 주식 거래를 하다 들키기도 했다. 같은 공제회의 주식운용부서 직원은 공제회 투자정보를 이용해 차명계좌로 2087회에 걸쳐 주식을 거래해 1억1838만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것으로 밝혀졌다. 공제회가 매수할 예정인 종목을 미리 산 뒤 주가가 오르면 파는 ‘선행매매’ 수법이었다고 한다. 한국수출입은행은 지난 2004년 8월 ‘인터넷 사이트 접속 제한 지침’을 만들었지만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점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감사원은 근무일수의 80% 이상 주식 거래를 한 금융 공기업 임직원들에 대해선 해임을, 나머지 임직원들에 대해선 징계를 하라고 통보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임직원들의 주식 사이트 접속 기록을 검토한 결과 연봉이 높고 정년이 보장된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금융 공기업에서 가장 심각했다”면서 “이들 금융 공기업들은 투자정보를 이용해 부당이득을 취할 가능성이 있어 근무시간 중 사적 주식 거래 행위를 원천적으로 금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적발된 공기업 직원들은 출장 때도 잘못을 저질렀다. 한국산업은행 직원 18명과 한국자산관리공사 직원 2명은 지방출장을 간다고 허위 보고하고 승낙을 받은 뒤 개인적으로 해외여행을 갔다. 한국자산관리공사 직원 9명은 정식 휴가신청을 하지 않고 휴가를 다녀왔다.

 한국수출입은행은 직원들을 해외출장 보내면서 여신을 받은 수출기업에 항공 운임·식비·숙박비 등 출장비용을 떠넘겼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일부 직원은 비즈니스석 항공권을 끊고서 비용을 업체에 내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출입은행 측은 “내부 규정상 여신과 관련한 비용은 수익자가 내야 한다”며 “비용 부담에 대한 정확한 내부 가이드라인을 곧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철재·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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