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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우리 가족 이야기 ③ 최석환·촐롱체첵씨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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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최석환(오른쪽 첫째)씨가 운영하는 서울 석촌동 합기도 도장에 온 가족이 모였다. 사진 왼쪽부터 호세·촐롱체첵씨·지혜·희선. 가족들의 기합소리에 놀랄 법도 한데 지혜는 시종일관 재미있다는 표정이다.


주한몽골이주여성회 촐롱체첵(37·서울 삼전동) 회장의 가족을 만났다. 그는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태어나 현지 명문 세룰렉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무역회사에 다녔고, 1996년 거래처였던 한국 회사로 이직을 하면서 한국에 왔다. 그는 처음부터 한국이 좋았다고 했다. 우선 따뜻한 날씨가 마음에 들었다. 겨울이 봄 같았다. 한국 노래도 좋았다. 노래를 부르며 한국말을 익혔다. 그리고 2003년 만난 한국 남자와 사랑을 하게 된다. 네 살 연상. 몽골에서도 ‘제일 잘 맞는 나이’라며 좋아하는 나이 차다. 그는 2005년 결혼했다. 이혼 후 혼자 남매를 키우고 있었던 최석환(41)씨가 그의 남편이다. 다문화 가족이자 재혼 가정. 쉽지 않은 출발이었다. 하지만 이젠 몽골에 계신 부모님도 “안심한다”고 하셨단다. 웃을 일이 점점 많아지는 데는 2008년 태어난 막내 지혜의 재롱도 톡톡히 한몫한다.

글=이지영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돌다리 두드리며 출발

두 사람은 2003년 서울 잠실역 부근에 있는 곱창집에서 처음 만났다. 옆 테이블에서 친구와 이야기하고 있는 촐롱체첵씨에게 최씨가 먼저 말을 걸었다. 러시아어로 “아가씨, 물 좀 건네달라”고 했다. 옷차림을 보고 ‘러시아에서 온 고려인인 것 같다’고 넘겨짚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러시아어를 배웠던 촐롱체첵씨는 그 말을 알아들었다. 자연스럽게 대화의 물꼬가 터졌고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여느 연인처럼 두 사람은 사귀기 시작했다. 함께 커피를 마셨고, 영화를 봤다. 합기도 청겸회 총관장인 최씨는 촐롱체첵씨에게 합기도를 가르쳐 줬다. 그렇게 1년여를 보낸 뒤 두 사람은 결혼을 생각했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촐롱체첵씨에겐 ‘새엄마’가 되는 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잘 키울 수 있을까 걱정되는 게 당연했다. 대학에서 영어를 부전공으로 공부했던 촐롱체첵씨는 영어 과외선생님으로 최씨 아이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호세(17)와 희선(14)이 모두 초등학생이었을 때다.

“아이들이 다 착하더라고요. 아빠를 꼭 닮은 모습이 예뻤죠.”

아이들도 촐롱체첵씨를 잘 따랐다. 촐롱체첵씨가 과외가 끝내고 집을 나서면 아이들이 “선생님 가지 마시라”며 붙잡곤 했다. 최씨가 “아빠 재혼할까?”라며 아이들을 슬쩍 떠봤을 때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희선이가 먼저 “영어선생님 어떠냐”고 권했다.

다음 고비는 촐롱체첵씨의 부모님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장인·장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컸어요. 이혼 경력도 있고, 애들도 있고….”

울란바토르로 찾아간 예비사위를 직접 만나보고서야 부모님의 허락이 떨어졌다.

“엄마는 끝까지 걱정을 하셨지요. 한국 드라마에 워낙 고부갈등 얘기가 많이 나오니까 그것도 걱정이셨던 모양이에요.”

이렇게 한발 한발 신중하게 과정을 밟느라 첫 만남에서 결혼까지 꼬박 2년이 걸렸다.

서로를 잘 알고 시작한 만큼 결혼생활은 순탄하게 이어졌다. 2008년엔 딸 지혜도 태어났다. 촐롱체첵씨는 “갈등을 빚는 다문화 가족을 보면 맞선 한 번에 말도 안 통하는 상태에서 성급하게 결혼을 결정한 경우가 많다”면서 “딱히 상대가 속인 게 아니라 하더라도 실상을 모른 채 결혼하면 결과는 ‘사기결혼’과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촐롱체첵씨가 몽골 여성들의 한국사회 정착을 돕기 위해 ‘주한몽골이주여성회’를 만든 것도 이런 안타까움에서 나왔다.

“때론 언어장벽이 약”

‘붕어빵’ 가족. 다섯 명의 얼굴이 정말 닮았다. 촐롱체첵씨는 “나와 시어머니가 꼭 닮았다는 말도 많이 듣는다”고 했다.

한국에 산 지 벌써 16년째. 촐롱체첵씨는 한국말을 유창하게 한다. 하지만 남편 최씨가 말을 빠르게 하면 못 알아듣기도 한다. 바로 부부싸움을 할 때다.

“말다툼을 하다 보면 제 말이 빨라져요. 그럼 아내가 입을 닫아버리죠. 못 알아듣는 눈치예요. 때론 못 알아듣는 게 다행이다 싶어요.”

최씨가 신이 나 이야기하자 촐롱체첵씨가 한마디 거든다.

“꼭 그런 이유만 있는 건 아니에요. 시어머니께 배운 지혜죠. 일단 상대가 흥분한 상태에선 말을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평정심을 찾았을 때 차근차근 짚어보는 게 낫다고 하셨어요.”

이렇게 싸울 때 입을 다무는 촐롱체첵씨의 마음을 최씨는 이제 표정에서 읽는다.

“입술을 잘 봐야 해요. 입술이 앞으로 나오면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뜻이거든요.”

촐롱체첵씨에게 한국말보다 어려운 건 한국 음식이다. 매주 토요일 송파구 다문화지원센터에 가서 한국 요리를 배우고 있지만 된장찌개·열무김치 등의 맛을 내기는 아직도 힘들다. 대신 가족들이 몽골 음식을 좋아해서 다행이다. 고기만두와 볶음국수, 양고기 보쌈 등이 촐롱체첵씨의 단골메뉴다.

“취미 같아 늘 붙어다녀요”

첫인상대로 아이들은 착했다. 사춘기를 거친 호세와 지금 한창 사춘기를 통과 중인 희선이. 별달리 부모 속 썩인 기억이 없다. 새로 태어난 동생도 잘 돌봐준다. 하지만 공부 부담에선 자유롭지 못하다.

“더 잘할 거예요.”

아이들에게 공부 잘 하냐고 묻자 촐롱체첵씨가 먼저 말을 받아 대답했다. 그리고 “더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봐줬어야 했는데…”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막내 지혜를 키우며 주변 엄마들을 보니 교육열이 대단하더란 것이다.

“도서관도 아닌 서점에서까지 애들을 옆에 끼고 책을 읽어주더라고요. 우리 희선이도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해줬으면 지금보다 훨씬 공부를 잘했을 텐데….”

공부 대신 취미생활 이야기가 나오자 분위기는 한결 밝아졌다. 합기도는 이들 가족의 공통된 특기다. 손가락 하나로 상대를 들어올리는 아버지 최씨는 합기도 7단. 호세와 희선이는 검은띠를, 촐롱체첵씨는 빨간띠를 땄다. 요즘도 저녁때 가끔 최씨가 운영하는 도장에 모여 함께 수련을 한다.

노래도 이들 가족에겐 빼놓을 수 없는 취미다.

“분야는 다 달라요. 아빠는 트로트, 엄마는 팝송, 오빠는 랩, 전 가요, 그리고 지혜는 동요를 잘 불러요.”

말수 줄어든 사춘기 희선이도 노래 얘기엔 눈이 반짝반짝한다. 이들의 노래 실력은 전국 무대에서도 공인을 받는 수준이다. 촐롱체첵씨와 호세는 지난달 29일 수원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열린 제1회 전국다문화가족합창대회에 출전해 가수 조피디의 ‘친구여’를 불렀다. “합창대회에 중창팀이 본선에 올랐으니 잘하긴 잘했던 모양”이라며 촐롱체첵씨는 자랑했다. 희선이와는 2008년 원음방송에서 주최한 가족동요대회에 나가 대상을 받은 경력이 있다.

“아이들이 크면서 가족들이 다 모이는 시간이 점점 줄어요. 그래서 노래 연습을 하자며 같이 노래방 가는 시간이 더 재미있고 소중해지네요.”

평범한 일상, 소박한 행복이 곧 ‘이소빈’이란 새 이름으로 귀화할 예정인 촐롱체첵씨의 말 속에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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