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법인화와 ‘사전 예방의 원칙’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24호 35면

서울대 법인화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학교 외부에는 ‘법인화 반대’교수들이 ‘철밥통’ 공무원 신분을 버리기 싫어하고 대학 개혁을 저해하는 식으로 비쳐질 수 있겠지만, 법인화의 실상은 이보다 더 복잡하다. 논란의 핵심은 법인화가 될 경우에 법인화 추진론자들이 얘기한 대로 대학이 좀 더 바람직한 상태로 바뀔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지금의 대학 체제가 최선은 아니겠지만, 미래의 새로운 체제가 안고 있는 불확실성이 너무 커서 개악의 가능성마저 상당하다는 것이다.

국립대학으로서의 서울대는 교육과학기술부에 의해 시시콜콜한 것까지 간섭을 받는다. 학교 운영을 담당하는 보직교수들은 ‘서울대가 법인화될 경우 정부 재정 지원은 계속 받되 정부 간섭에서 벗어나 학교를 보다 효율적이고 경쟁력 있게 운영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예를 들어 법인화가 돼 대학 운영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지면 학과의 벽을 낮추고 ‘자기 학문 이기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새로운 학문 분야에 대한 지원과 실험적인 지식 융합이 촉진돼 창의적인 연구와 교육을 위한 여건이 조성될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전혀 다른 결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 법인화 이후에 새로운 재원이 필요할 때 학교는 대학원의 등록금을 인상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기초과학이나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대학원을 외면하는 지금의 경향이 더 심화될 수 있다. 법인화법에 순수학문이나 기초학문을 지원하는 조항이 명문화돼 있다고 하지만, 총장이 정하는 학문 분야를 ‘예산의 범위 내에서 지원한다’는 것이어서 그 실효성이 불확실하다.

서울대 법인화의 가장 큰 쟁점 중 하나는 지배구조, 즉 거버넌스가 과연 지금보다 더 자율적으로 바뀌느냐 여부다. 법인화 이후 지배구조는 15명의 이사로 구성된 이사회가 최고의 힘을 갖는 의결기관이 된다. 이사 중엔 정부를 대표해 교과부 차관과 기획재정부 차관이 당연직으로 포함된다. 이는 정부의 지배와 통제를 존속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낳는다. 이에 맞서 15명 가운데 2명에 불과한 정부 관료가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없으리라는 반론도 존재한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도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이사 15명 가운데 9명이 교과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임명되는 선임직 이사인데, 이런 이사로 선임되는 기업체나 국영기관의 ‘높으신 분’들이 정부의 뜻에 반하는 결정을 하기란 통상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 감사도 교과부 장관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 대학의 최고 의사결정구조가 이렇게 될 때 지금보다 효율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새로운 전횡과 ‘독재’가 가능할 수 있다.

2004년에 모든 국립대학교를 법인화한 일본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지난해 7월 ‘국립대학 법인화 이후의 현상과 과제’에 대한 중간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에선 법인화 이후에 정규 교원의 인건비가 감소하고 비정규 교원의 인건비가 급격히 증가했으며, 특히 인문학 분야에서 교원 수가 계속 감소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대학 수익사업과 관련해 교수들의 사회활동이 증가하고 기업과의 공동 연구가 늘었지만, 그만큼 연구와 교육에 할애하는 시간은 줄어들었음이 밝혀졌다.

우려할 만한 일은 법인화된 일본 대학의 연구 영역에서도 나타났다. 교수들의 연구비 수주는 증가했지만, 연구 시간과 논문 수는 오히려 감소했다. 몇몇 대학의 평가 순위도 더 떨어졌다. 게다가 단기 성과가 나올 주제에 연구가 집중되는 경향이 뚜렷했다. 보고서에선 기초과학이나 인문·사회계열 분야에서 학문의 계승과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우려하고 있다.

불확실성이 지배적일 때에는 ‘사전 예방의 원칙’에서 교훈을 얻어볼 필요가 있다. 좁은 의미로 이 원칙은 제품 생산자가 안전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넓은 의미로는 새로운 위험 요소의 도입을 충분히 천천히 하고, 미래에 대한 다양한 시뮬레이션과 예측을 하면서, 문제 발생 시 원상 복귀할 길을 열어두고 구성원들의 참여와 숙의를 통해 적극적으로 합의를 이끌어내 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서울대 법인화는 서울대라는 한 학교를 넘어서 국립대학 체계라는 우리의 고등교육 체계의 근간을 건드리는 일이기에, 사전 예방의 원칙을 조심스럽게 적용해 보는 것을 고려할 시점이다.



홍성욱 과학기술사를 전공하고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 교수. 서울대에서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을 운영 중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