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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써니리]“중국에서 15년, 나는 다시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중앙일보

입력

한 주재원의 고백: "중국에서 15년, 나는 다시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10만 중국통을 양성하자'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조선시대 이율곡 선생이 왜구의 침략을 예견하고 10만 대군을 양성하자고 선조에게 건의한 것을 '패러디'한 것이다. 다가오는 '중국의 시대'를 준비하자는 것이다.

아는 사업가는 아들이 둘 있는데, 큰 아들은 영국에, 작은 아들은 중국에 유학을 시키고 있다. 둘 다 조기 유학이다. 웃으면서 하는 말이 "혹시 '중국의 부상'이 실패하더라도 큰 아들은 영국에 유학시켰으니 적어도 50%의 자식농사 성공한 셈이다'라고 스스로 전략을 설명해 주었다.

이전 2007년경 한국대사관은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인 숫자를 약 80만이라고 추정하였다. 지금은 어림잡아 100만이라는 소리가 있다. 중국에서, 중국의 공기를 마시고, 중국 친구와 밥을 먹으며, 중국 TV보며, 중국인들과 같이 사업을 하고, 중국학교를 다니는 한국 사람들이 무려 100만이라는 게다. (그런데 한국인들이 과연 그렇게 생활하고 있을까?) 참 많다. 그들 중의 '중국통'은 과연 몇 명이나 있는가?

"이 세상에서 중국을 가장 잘 아는 나라는 한국이다?"

"이 세상에서 중국을 가장 잘 아는 나라는 한국이다." 이 말을 종종 듣는다. 중국에 나와 있는 주재원들이고 사업가들이다. 한국 주재원들이 말하는 '중국통'은 '중국시장에서 사업 잘하는 사람'이란 뜻이 주를 이룬다. 이 말은 맞다. 중국에 나와 있는 다국적기업 중에서 중국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사업상의 실수와 오차를 그래도 가장 적게 경험한 것이 바로 한국비즈니스계이다. 시쳇말로 중국 시장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수업료'를 덜 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또한 역사적으로 공유하는 문화적, 정서상의 친근함도 한 몫을 했다. 예를 들어, 미국시장에서 미국인들과 와인을 마시면서 사업을 토론하는 것보다는 왠지 중국인과 고량주를 마시면서 '형님, 동생'하다가 사업딜을 한 껀 하는 것이 동양적 한국인 정서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자 그러면 중국인들이 보기에도 한국인들 중에 '중국통'들이 가장 많아야 할 것이다. 그들은 어떤 외국인들을 '중국통'으로 보고 있을까? 중국인들의 중국통에 대한 '정의'는 무엇인지 보자. 중국 최대의 인터넷 포털인 바이두(百度)는 '중국통(中国通)'을 "指熟悉中国情况的外国人"이라고 햇다. 1."중국사정을 잘 이해하는 외국인"이라고 하고, 부연 설명으로 2."“汉学家” (한학자), “知华派” (지중파), “拥抱熊猫派”라고 했다. “拥抱熊猫派”란 'panda hugger' (팬더를 포옹하는 사람)이다. 영어 표현에서 온 것으로 중국의 부상을 위협으로 보지 않고 포용하는 정책을 펴는 서양 논객을 일컫는다. 전 호주 수상이었으며 현 호주 외무장관인 케빈 러드 (Kevin Rudd)가 대표적이다. 그밖에도 3. 넓은 뜻에서 (广义上), 중국의 민족, 언어, 문화, 풍습을 이해하는 사람. 4. 좁게 정의 하자면 (狭义上),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외국인 (会说一口很流利中国话的外国人)이라고 바이두는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게임 룰을 정해 놓고, 그 틀에서 보자면 한국 주재원들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중국통'은 자리매김할 수 있는 위치가 뭔가 어정쩡해진다. 위의 보기에서 '중국에서 사업을 잘하는 사람'이란 카테고리가 없다. (물론 '중국을 잘 이해하니까 중국에서 사업을 잘한다'는 2차적 논리는 가능할 수도 있다). 한국인 스스로 중국을 가장 잘 안다고 하지만, 막상 중국인들에게 물어보면 그들은 중국을 가장 잘 아는 국가로 일본을 꼽는 경우가 많다. "한국인들은 어떤가?"라고 물으면 그들은 "한국인은 친구다"라고 에둘러 표현한다. 물어본 질문은 "한국인들 중에는 중국통이 있는가?"였다.

"중국어는 조금 못해도 내 전문 분야 실력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중국에 나와있는 한국인들이 100만에 이르고, 중국에 있는 외국유학생 중에서 한국인이 가장 많고, 중국어로 "밥먹자, 놀자"하는 일상회화를 할 수 있는 이는 한국인들이 월등하게 많으나 진정한 '중국통'인 한국인은 참으로 드물다는 지적이 있다.

위에 百度에서 마지막으로 정의한 '중국통'의 정의인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외국인'만 봐도 그렇다. 한국 교민들 중에서 일상생활 중국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많으나, 중국어로 중국인들과 토론이 가능한 수준의 중국어를 구사할 줄 아는 한국인은 과연 얼마나 되는가?

중국에 온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기본적인 중국어 밖에는 구사하지 못하는 한 주재원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본인의 허락을 맡아서 기재한다. 이름은 밝히지 않는다.) 그는 1996년에 중국에 왔으니 중국에만 벌써 만 15년 차다. 한국 대기업의 세일즈 담당 매니저로 중국에 왔다. 정착한 곳은 당연히 한국촌인 왕징이다. 그는 중국에 왔지만 중국어를 배울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거래처가 대부분 다른 한국기업이었다. 중국어가 필요할 경우에는 조선족 동포 직원이 통역을 해주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서 부인이 해주는 한국밥을 먹고 출근했고, 한국어로 대부분 일을 보았고, 퇴근후에는 다른 한국 주재원들과 술을 마셨으며, 주말에는 한국인들과 골프를 쳤다. 이 정해진 생활범주에서 그는 안전함을 느꼈다. 중국어는 딸렸지만 "내 전문 분야 실력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주재원으로서 그의 생활은 경제적으로도 안정적이었고, 그는 중국생활을 즐겼다

그는 중국 생활 4년차인 2000년도에 서울 본사에서 귀국 결정이 떨어지자 회사를 그만 두었다. '큰 중국 시장'에 있으니 배포가 커진 것이다. 뭔가를 해보고 싶었다. 스스로 중국에서 창업의 길을 시작하였다. "자신감이 넘쳤다. 중국에서 뭔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같은 것이 있었다."

그는 뭘할까 고민하다가 'IT산업'을 시작했다. 진입하는 문턱이 낮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위기를 겪었다. 중국어였다. IT산업은 거래처의 고위층을 직접 접촉해야 거래가 성사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 통역을 내보내기에는 '직위'가 맞지 않았다. 본인이 직접 나서서 상대편 고위층과 1대1일로 상담해야 효과가 좋다는 필요를 많이 경험했다. 중국생활 5년 만에 처음으로 중국어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순간이었다.

"중국어를 모르는 사람은 중국에 오지 말라!"

그는 날로 부유해지는 중국인들과의 거래처를 뚫을 생각이 간절했지만 종종 좌절을 겪었다. 직접 중국측 거래처와 만나고 식사를 하면서 같이 나눌 수 있는 화제의 빈곤함도 절감했다. 중국어가 안돼니 중국문화를 말하기는 더욱 그랬다. 중국인들의 문화를 모르니 화제가 겉돌기만 하고, 식사시간이 어색해질 때가 많았다. "이전에 화장품 세일즈를 할 때는 중국측 거래처와 식사를 할때도 그냥 서로 웃으며 술기운으로 해결하면 됐다. 하지만 IT는 달랐다. 지식 산업이다 보니 내가 전문지식을 알고 있어야 했고 또 그것을 상대방 중국인에게 설명을 해줄 수 있는 언어능력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일단은 기존에 자신이 있고 인맥을 쌓아둔 한국회사들과 거래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로 하고, 중국 시장은 차차 뚫기로 하였다. 하지만 배경없이 선택한 IT산업은 다른 한국기업에게 '출사표'를 내기도 힘들었다. 심지어 이전에 바로 자신이 주재원으로 근무했던 회사의 납품도 거절당하는 좌절을 경험했다.

좌충우돌을 겪으며 그렇게 10년이 또 흘렀다. 그는 현재 베이징에서 중견 사업가로서 '성공'한 것으로 여겨진다. 중국직원만 100명이 넘게 근무하고 있고, 최근에는 인도네시아에도 진출하였다. 남들이 보면 대단하다 하겠지만 그의 속사정은 틀렸다. "중국시장을 못 뚫으니까, 동남아시아로 진출한거다"고 했다.

그는 자신을 '절반의 성공'이라고 정의했다. 나머지 절반을 성공하지 못한 이유로 그는 '중국어'를 들었다. 본인이 만 15년 중국에 있으면서 몸서 중국시장을 주재원으로서, 나중에서는 개인사업가로서 경험한 그는 새로 중국시장에 진출하는 후배 사업가에게 해 줄 말이 뭐냐고 하자 주저하지 않고 바로 말했다. "중국어를 모르면 중국에 진출하면 안됀다!"

그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전화가 울렸다. 아까부터 울리던 전화다. 알고보니 매일 전화로 중국어를 배우는 서비스다. 베이징에 있는 한 한국회사가 개발해서 한국인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다.

"최근 다시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 여러 복잡한 사연과 감정이 듬뿍 담긴 한마디였다.

써니리 '한중미래연' (韓中未來硏) 전문위원 boston.sunny@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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