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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익은 i -쇼핑몰

중앙일보

입력

21세기 비즈니스의 화두는 단연 인터넷이다. 특히 너도나도 인터넷을 이용한 쇼핑몰 사업으로 한몫 잡으려고 야단이다. 인터넷 수저를 들지 않으면 인터넷 밥상에 끼지 못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은 화려한 것만은 아니다. 인터넷쇼핑몰 선두업체들은 돈만 들고 수입은 없어 속만 태우는 실정이다. 그 통에 쇼핑몰 주변의 배송업체, 쇼핑몰 구축 및 보안업체들만은 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2~3년 안에 3만~4만개의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더 생길 것이란 게 일반적인 전망. 과연 인터넷 쇼핑회사들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주부들의 쇼핑행태에 획기적인 변화바람을 몰고 오는 인터넷쇼핑 산업의 허실을 짚어 본다.
<편집자>

전자상거래의 허와 실. 21세기 비즈니스 세계의 화두는 아무래도 전자상거래가 될 것 같다. 기업들은 전자상거래를 하지 않으면 행세를 못할 정도가 됐다. 대기업·중소기업 할 것 없이 너도나도 이 시장에 뛰어 드는 가운데 과거에 듣도 보도 못한 다양한 형태의 사이버 쇼핑몰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전자상거래는 과연 미래의 ‘엘도라도’일까. 물론 소비자 입장에선 좋은 물건을 값싸게 사는 기회가 넓어지는 등 확실한 수혜를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업자들은 사정이 다르다. 잘 나간다는 쇼핑몰 업체들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외화내빈인 경우가 많다. 전자상거래에 맞는 업태가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도 나도 뛰어들다 보니 과당경쟁, 과잉투자의 후유증도 심각하다. 이미 골병이 들대로 들어 존폐 위기에 몰리는 사례도 허다하다.

이런 속에서도 택배업체 등 주변업자들은 호황의 단맛에 젖어 있다. 이렇듯 전자상거래는 모두에게 윈윈 게임이 아니라 참여자에 따라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선 아마존·이베이 등 내로라 하는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적자누증과 주가폭락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소식이다.

급증하고 있는 사이버쇼핑몰 수만 보더라도 무차별적으로 불고 있는 전자상거래의 열풍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국내 사이버쇼핑몰은 98년엔 4백여개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엔 이의 3배 정도인 1천2백여개로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는 약 2천여개. 이같은 추세라면 올 연말엔 5천여개는 충분히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니까 불과 3년 만에 시장규모가 10배 이상 급신장하는 셈이다. 내년엔 1만개는 족히 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장영 박사는 앞으로 수년내 사이버쇼핑몰이 최소 3만~4만개가 더 생길 것으로 본다. 무엇보다 국내 인터넷인구가 급증, 사이버쇼핑에 대한 수요가 폭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인구가 1억1천만명선인 미국의 경우 사이버쇼핑몰은 이미 6만개를 돌파했다. 우리의 인터넷인구는 현재 1천1백만명선인데, 올해나 내년이면 3천만명을 돌파할 것이란 전망이다. 그런데 문제는 양적인 팽챙만큼 속내용이 따라주느냐 하면 그게 아니다.

인터넷 홈페이지만 차려 놓고 영업을 하지 않아 개점휴업에 들어간 곳이 전체의 80%가 넘는다. 제대로 영업한다는 소리를 듣는 곳은 4백여곳에 불과하다. 알짜는 대기업이나 몇몇 유명 전문사이트를 포함해 2백여곳도 안 된다는 얘기도 있다. 사이버쇼핑몰 시장 규모는 매년 급증하고 있다. 업계는 98년 5백억원에서 99년 1천5백억원, 올해 8천억원에 달하고 내년엔 2조원대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러나 사이버쇼핑몰 업체들의 매출은 신통치 않다. 그것도 대부분 적자의 수렁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업체 수가 많은 데다 일반소비자들이 사이버쇼핑몰에서 물건을 사는 일이 아직 익숙지 않기 때문이다. 월매출 5백만원이 안 되는 곳이 전체의 80%가 넘는 등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사이버쇼핑몰 전문가인 H씨는 “국내 사이버쇼핑몰 업체 중 70%는 직원수가 2~3명, 15%는 10~20명, 5%만이 30명 이상일 것”이라고 진단한다.

▶ “뜸 더 들여야 밥 된다”

그는 사이버쇼핑몰이 ‘돈’이 되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우선 사업성이 확실치 않다. 또 기존에 다른 사업을 하다가 부가적으로 쇼핑몰을 운영하는 경우에도 실제 매출은 그리 높지 않다. 아직도 물건은 유명한 전문 사이버 쇼핑몰이나 오프라인상의 유명 백화점에 가서 사는 게 낫다는 소비자들이 많다. 게다가 작은 쇼핑몰은, 믿을 수 없는 엉터리라고 생각하는 일반인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이버쇼핑몰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버쇼핑몰을 구축하려는 업자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왜 그런가. 우선 사이버쇼핑몰을 구축할 때 돈이 거의 안 들기 때문이다. 공짜나 다름 없다. 1~2년 전만 해도 좋은 쇼핑몰을 구축하려면 몇천만원이나 몇억원이 들었지만 이젠 다르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업체사정에 알맞은 쇼핑몰을 외주를 통해 구축한다고 해도 싸게는 1백만원이면 충분하다. 입력하면 모든 디자인이 끝나는 쇼핑몰 패키지 소프트웨어도 나왔다. 50만원이면 가능하다. 아예 공짜로 쇼핑몰 소프트웨어를 주는 곳도 생겼다. 단 ‘공짜’를 주는 회사에서 웹호스팅을 이용해야만 한다. 이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사이버쇼핑몰의 사장이 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쇼핑몰 급증의 또 다른 배경은 인터넷의 특징인 선점효과다. 사이버상에서 미리 ‘여기는 내 땅’이란 말뚝을 표시해 놓는 것 자체가 돈이 된다는 것이다. 혹시 장사가 안 돼 나중에 남에게 그 사이트를 팔아넘길 때에도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다는 속셈도 숨겨져 있다.

그러다 보니 난립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6개월만 지나면 30%의 기존 사이버쇼핑몰이 없어지고, 또 그만큼 새로 생긴다는 분석이다.

인터넷가격정보사이트를 운영하는 S사장은 “매일 새로운 사이트를 개설한 사장들을 만나러 다니느라 바쁘다”며 “앞으로 장사 안되는 사이트들이 대규모로 정리되면서 합쳐질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지만 이는 틀린 시각”이라고 지적한다. 합쳐지는 게 아니라 없어지고 새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속옷을 파는 쇼핑몰과 골프용품을 파는 쇼핑몰이 합쳐져 봐야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 사이트는 실체가 없는 껍데기에 불과하기 때문에 새로 만드는 게 더 낫다는 것이다.

▶ 박해지는 마진이 문제

사이버쇼핑몰 업체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배송과 노마진에 가까운 수익성이다. 소비자들이 편하게 쇼핑할 수 있어 좋겠지만 사이버쇼핑몰 태반은 골병이 들어있는 현실이다. 평균 물류비용(상품판매가격 중 5~10%)
과 고객서비스 비용(이벤트 비용)
, 인건비 등을 감안하면 남는 게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오프라인과 함께 온라인 상에서 컴퓨터를 전문적으로 파는 K사장의 고백. “컴퓨터나 가전제품은 브랜드만 보고도 소비자들이 사가기 때문에 온라인상에서도 많이 팔 수 있지만 마진이 문제다. 온라인으로 팔면 가격경쟁이 치열하다. 때문에 온라인 판매 때의 마진은 오프라인에 비해 5%포인트 적다. 물류비 및 인건비와 유지비를 감안하면 사실 적자를 보면서 일부러 출혈판매를 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온라인상의 시장을 우리 업체가 선점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방법 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다. 예를 들어 1~2년내에 다른 컴퓨터전문 사이버쇼핑몰 업체들이 모두 죽고, 우리만 살아 남는다면 그때는 정말 할 만하지 않겠는가.”

‘선점효과’ 때문에 마지 못해 사이버쇼핑몰을 운영해 나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현실 세계와는 달리 사이버 거래에 적합한 아이템이 제한돼 있다는 사실은 모든 사이버 업자들이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 분야별로 2~3개만 살아남아

K사장은 “예를 들어 MP3, 금융상품, 보험상품, 여행상품, 티켓상품 처럼 배송문제가 전혀 없는 상품이 사이버쇼핑몰에서 잘 팔리는 품목”이라며 “이마저도 워낙에 많은 사이트가 등장,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사이트 자체가 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 사이버쇼핑몰 시장 매출의 80%는 유명 브랜드가 붙어 있는 가전제품이나 컴퓨터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20%는 책·음반 같은 소비자들이 가격을 가늠할 수 있는 제품에서 나온다는 것.

전문가들은 앞으로 한솔씨에스클럽이나 삼성몰 같은 유명 브랜드의 종합몰이나, 혹은 책·음반·디지털상품 등을 다루는 전문 사이트만이 분야별로 2~3개씩만 살아 남고 나머지는 모두 사라지거나 개점휴업 상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고객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사이트만이 살아 남는다는 것.

최근 미국에 이어 우리나라에서도 해커들의 침입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자칫하면 고객 자신의 정보가 새나갈지 모른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사이버 거래가 뚝 떨어졌다. 어쩌면 컴퓨터 보안문제를 해결하느냐의 여부가 전자상거래 활성화의 키를 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유상원 기자·wiseman

이코노미스트 제5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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