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 기자의 푸드&메드] 플라스틱 식품 용기 안심하고 쓸 수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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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물병을 사기 위해 기자는 마트를 찾았다. 판매대엔 PP(폴리프로필렌)·PET(페트)·트라이탄 등 다양한 재질의 물병이 진열돼 있었다. 비슷한 용량의 제품이라도 가격차가 5배 이상 나기도 했다. 특히 ‘무(無)환경호르몬’이나 ‘bisfree’(환경호르몬 의심물질인 비스페놀A가 들어있지 않다는 뜻)라는 표시가 붙은 제품이 비쌌다. 우리 소비자가 환경호르몬에 대해 우려하며 이를 피하기 위해서라면 지갑을 열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환경호르몬에 대한 소비자의 ‘막연한’ 공포는 플라스틱 제품 가격에 반영된다. 최근엔 젖병 가격을 3배 이상 올려놓았다. 환경호르몬 의심물질인 비스페놀A가 ‘함유된’ 저가의 젖병이 해당 물질이 들어있지 않다는 고가의 젖병으로 대체됐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용기에 환경호르몬 등 유해물질이 ‘들어 있다’(함유)는 것과 유해물질이 ‘밖으로 새 나온다’(용출)는 것은 다르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일부 플라스틱 용기의 재질기준과 용출기준을 따로 설정한 것은 이래서다. 소비자 입장에서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유해물질이 얼마나 새 나오고 그 양이 용출 허용기준을 초과했는지 여부다.

 환경에 배출된 일부 화학물질이 체내에 들어가 마치 호르몬처럼 작용한다고 하여 환경호르몬(내분비계 장애물질)으로 명명됐다. 환경호르몬이 실제 호르몬과 다른 점은 쉽게 분해되지 않고, 사람의 지방조직에 축적돼 환경이나 체내에 오래 잔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환경호르몬 의심물질은 수십 수백 가지다. 대표적인 것이 최근 유럽연합(EU)이 유아용 젖병에서 전면 사용금지를 선언한 비스페놀A(BPA), 발포성 스트로폼 성분인 스티렌 다이머와 스티렌 트리머, 고엽제 성분인 다이옥신 등이다. 그래서인지 환경호르몬이라고 하면 먼저 플라스틱 용기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중금속·잔류농약·식중독균 등에 대해선 다들 인체 유해성을 인정하나 환경호르몬의 해악(정자 수 감소·성조숙증 유발·수컷의 암컷화 등)은 ‘우려된다’는 측과 ‘침소봉대’라는 측으로 전문가의 의견이 갈려 있다. 그래서 대중은 불안감을 더 느끼는지도 모른다.

 소비자 입장에선 ‘사려 깊은 회피’를 하는 것이 현명하다. 플라스틱 용기에 음식을 담아 전자레인지에 조리하거나 고열의 음식·물 또는 기름진(지방) 음식을 담아두거나 햇볕을 직접 받게 하는 등 플라스틱 용기에 ‘스트레스’를 가하는 일은 가급적 피한다. 환경호르몬의 용출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식품 용기의 안전은 식품 자체의 안전 못지않게 중요하다. 각종 용기엔 환경호르몬 외에도 발암물질·중금속 등 수많은 유해물질이 잔류할 수 있다.

 플라스틱 용기를 비롯한 각종 식품 용기들(포장재 포함)의 안전관리를 위해 EU·미국·일본·중국 등은 ‘허용물질 목록’(Positive List, PL)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이 제도는 식품 용기·포장재에 사용되는 원·부재료 (단량체·첨가제 등)의 리스트 작성→다양한 독성시험 자료를 바탕으로 한 재질기준·용출기준 설정→기준치를 초과한 제품에 대한 제조·판매 불허로 이어진다. 이를테면 식품 용기의 제조에 사용하는 개별 물질에 대해 사전관리를 하는 시스템이다(독일 프라운호퍼 공정공학 및 포장연구소 강릉센터 윤찬석 센터장).

 반면 우리나라는 PL제도를 도입하지 않고 있으며, 완성품에 대한 사후관리에 치중한다. 식품 용기의 제조에 동원되는 재료는 수백 수천 가지인데 국내에서 허용기준이 설정돼 있는 것은 수십 종(EU는 850여 종)에 불과한 것도 우리나라 용기 관리의 허점이다.

 현행 제도 아래에선 국내에서 사용 중인 식품 용기에 어떤 물질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제조업자 외엔 알 길이 없다. PL제도의 도입이 식품 용기의 안전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자는 생각한다.

박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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