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회주의 50년 … 쿠바를 가다 <상> 체 게바라를 팝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쿠바 아바나 시내의 한 건물 벽에 체 게바라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그는 이제 전 세계 관광객을 쿠바로 이끄는 아이콘이 됐다. [아바나 AP=연합뉴스]


고기 비린내가 덥고 습한 공기와 섞여 묘한 냄새를 풍긴다. 역겹다고 생각할 틈도 없다. 사람끼리 부닥치는 소리가 워낙 시끄러워서다. 지난달 18일 쿠바 아바나 시내 뒷골목의 작은 시장. 낡은 저울을 사이에 두고 승강이를 벌이는 여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자 돼지고기를 뭉텅 잘라 내놓은 정육점이 보였다. 이 소박한 고깃집 벽에 시장을 내려다보는 한 인물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체 게바라다. 시장 곳곳엔 그의 혁명구호가 걸려 있었다.

‘patria o muerte(조국이 아니면 죽음을)’ ‘Hasta la victoria siempre(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

 정육점 주인에게 물었다.

 -고깃집에 왜 체 게바라 초상화인가.

 “그는 쿠바 별이기 때문이다. 그를 항상 마음에 품고 다닌다는 뜻이다.”

 -아직도 사회주의 혁명을 꿈꾼다는 말인가.

 “그건 아니다. 체 게바라는, 과거에는 우리에게 나라를 주었고, 이제는 돈을 불러온다.”

 1959년 친미독재정권을 붕괴시키고 혁명에 성공한 나라, 61년 사회주의를 선언해 올해 사회주의 체제 50년이 된 나라. 쿠바에서는 체 게바라를 팔고 있었다. ‘위대한 혁명가’는 ‘최고 인기 상품’으로 부활하고 있었다.

 체 게바라는 전 세계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혁명 아이콘’이다. 한국에서도 그의 열풍은 뜨겁다. 평범한 의대생에서 혁명 전사로 변신한 그의 일생은 극적인 드라마다. 세계 혁명을 추구하다 볼리비아에서 사살된 비극적 종말도 서사의 극치다. 국내에서도 그의 일생을 다룬 책들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런 혁명 영웅이 쿠바에서는 살아 있는 ‘관광 아이콘’이다. 내 식으로 살겠다는 기묘한 사회주의 국가 쿠바. 스무 시간이나 비행기를 타고 가 아바나를 밟았다. 카스트로 형제가 집권하는 쿠바는 ‘체 게바라의 땅’이었다.

“체 게바라는 이제 ‘위대한 혁명가’라기보다는 ‘인기 있는 영웅’이지요. 피델이나 다른 영웅들의 사진과 책도 팔지만 체 게바라만큼 잘 팔리지는 않아요.”

 지난달 19일 쿠바 아바나 시내 무기광장에서 중고책을 파는 후안(50)은 이렇게 말했다. 광장에는 많은 외국인이 눈에 띄었다. 관광객들이다. 사회주의 50년 체제를 고수하는 이 작은 섬나라에 부는 변화의 바람은 이런 관광객들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지난 4월, 49년간 쿠바를 통치해 온 피델 카스트로가 권좌에서 물러나고 동생 라울이 공산당 제1서기로 선출됐다. 2008년 2월, 피델이 라울에게 국가평의회장 자리를 내준 데 이은 완전한 권력 승계다. 유례없는 형제 세습이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 거리 곳곳에는 혁명가 체 게바라의 얼굴이 보인다. 초상화와 사진을 비롯해 그의 얼굴이 새겨진 각종 기념품이 관광상품이 돼 팔려나간다. 사회주의 국가 쿠바는 상업광고가 없는 대신 그가 외친 혁명구호가 구석구석에 걸려 있다. [아바나 로이터=뉴시스], [임주리 기자]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다. 북한이 떠오른다. 1인 장기독재·세습·반미 등 두 나라의 닮은 점은 많다. 북한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세습이 다른 점이다.

미국의 경제 봉쇄로 물자 부족이 심각해 아바나 대부분의 건물은 심하게 낡았다. [아바나 로이터=뉴시스], [임주리 기자]

 그러나 평양과 아바나의 속모습은 달랐다. 라울 카스트로는 취임 일성으로 “경제적으로 필요한 변화를 취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식량배급제 단계적 철폐 ▶공무원 감축 ▶주택 매매 허가 등 경제개혁안을 당대회에서 통과시켰다. 국민이 굶어 죽든 말든 부자세습을 위해 인권을 탄압하고 국제사회에 핵 위협을 불사하는 북한과는 대비된다.

 쿠바가 개혁엔진에 시동을 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가난 때문이다. 쿠바의 1인당 국민소득은 5000달러에 불과하다. 이 가난은 어디서 시작됐을까. 아바나대 경제학부 하니아 가르시아 로렌조 교수는 “1989년 소련과 동유럽의 몰락에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전에도 미국의 경제 봉쇄로 쿠바의 살림살이는 풍족하지 않았지만 그럭저럭 꾸려 갈 수 있었다. 소련의 지원 때문이다. 주생산품인 설탕을 내다 팔고 원유를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소련 붕괴 후 쿠바는 국제무역량의 75%를 하룻밤 사이에 잃었다. 물자 부족은 이때부터 만성적인 문제가 됐다.

 쿠바는 살기 위해 눈을 돌렸다. 관광산업이다. 마침 전 세계 청년들의 ‘로망’인 체 게바라의 이미지가 화학적 결합을 하면서 관광산업에 활기를 띠었다.

 카르멘 카살 쿠바 관광부 관광정보국장은 “지난해에 250만 명가량의 관광객이 들어왔다. 올해는 270만 명 유치가 목표”라고 말했다. 쿠바의 관광수입은 연간 22억 달러(2009년) 정도 된다. 연간 수출액(22억4500만 달러)과 맞먹을 정도다.

쿠바 정부는 관광객들의 여권에 출입국 도장을 찍지 않는다. 미국을 오가는 데 불편함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대신 항공편이나 공항에서 파는 ‘여행자 카드’를 작성해 입국한다. [아바나 로이터=뉴시스], [임주리 기자]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쿠바의 노력은 눈물겹다. 지난달 17일 아바나의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 입국 비자를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쿠바로 들어가는 항공편이나 공항에서 25달러를 내고 ‘여행자카드’만 사면 된다. 이 카드는 출국 시 공항세(25달러)와 함께 반납한다. ‘쿠바의 흔적’은 여권에 전혀 남지 않는다.

 카살 국장은 “미수교국인 미국 여행자들이 쿠바에 들어올 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출입국 흔적을 남기지 않아 미국에 들어갈 때 문제가 되지 않도록 한다는 의미다. 적대관계라고 하지만 쿠바에 오는 미국인들이 쓰고 가는 돈과 미국에 거주하는 쿠바인들이 보내 주는 달러는 쿠바 경제를 유지하는 ‘링거’가 됐다. 미국의 쿠바인이 연간 보내는 돈은 연간 10억 달러로 추산된다.

 관광업이 성장하면서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자영업자도 늘었다. KOTRA 쿠바무역관 김정동 관장은 “자영업자 수가 15만 명 수준에서 최근 30만 명까지 늘었다”며 “주로 택시운행이나 민박업자가 많다”고 말했다.

 자본주의 햇볕이 쪼이자 한편에서는 체제의 그늘도 짙어지고 있다. 지난달 23일 아바나 뒷골목. 한 중년여성이 다가왔다. 아시아인은 처음 본다며 사진도 찍어 주며 친절하게 대해 줬다. 그러다 불쑥 “집을 빌릴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불법 민박업자다. 거리에선 “una moneda(우나 모네다, 1페소만)” “dame el dinero(다메 엘 디네로, 돈 주세요)”라며 손을 벌리는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이 아이들의 최고 꿈은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팀에 진출하는 거다.

 더 많은 돈을 원하는 인간의 본성을 쿠바 사회가 수용할 수 있을까. 외부의 시각은 미온적이다. 이성형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교수는 “라울의 경제개혁안이 쿠바를 획기적으로 바꿔 놓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며 “기본적으로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체제 유지”라고 말했다.

아바나(쿠바)=임주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