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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후나바시의 월드 뷰 World View

‘재생에너지 창업가’가 일본을 바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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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후나바시 요이치
전 아사히신문 주필

동일본 대지진은 일본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일본은 동일본 대지진으로부터 재건하지 못한 채 이대로 가라앉고 말 것인가, 아니면 이걸 지렛대 삼아 불사조와 같이 다시 회생할 것인가-.

 이 물음에 답하는 것은 아직 이를지 모른다. 특히 한층 혼미에 빠져가는 일본 정치가 일본의 앞길을 어둡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뭔가가 변하고 있다는 몇몇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대지진 후 일본 창업가들이 경쟁하듯 거액의 의연금을 출연하고, ‘탈원전’과 신에너지 구축을 통해 일본 재생을 향해 과감하게 나아가고자 하는 시도들 말이다.



 손 마사요시(한국명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이 재해지역에 사재 100억 엔을 기부하기로 약속한 뒤 10억 엔을 들여 ‘자연에너지 재단’을 설립한 것은 그 대표적인 움직임이다. 이 재단은 자연에너지를 연구하는 과학자 100명에게 주로 기술적 관점에서 에너지 시프트를 위한 조언을 받고, 그 조언을 정부에 제언해 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 외에도 재해지역 지원을 위해 10억 엔을 기부한 야나이 다다시(柳井正) 퍼스트리테일링 회장, 마찬가지로 10억 엔을 내놓은 미키타니 히로시(三木谷浩史) 라쿠텐(樂天) 사장, 두 사람 모두 재생에너지 추진에 열심이다. 니이나미 다케시(新浪剛史) 로손 사장과 후지와라 히로시(藤原洋) 나노옵토닉스 사장도 같은 부류로 볼 수 있다.

 니이나미 사장은 지진 직후 즉각 재해지역에 들어가 편의점을 전력·수도·교통·휴대전화와 더불어 새로운 공동체 라이프라인으로 만드는 데 온 힘을 쏟았다. 후지와라 사장은 현재 지역독점체제로 돼 있는 전력시스템를 개편해 차세대 송전망과 차세대 통신을 융합하는 ‘제2 전력회사’ 구상을 추진 중이다.

 그들은 ‘탈(脫)원전(原電)’을 추진하며 ‘신에너지’로의 탈피를 지향하는 이른바 ‘재생에너지 창업가’들이다. 대지진 이후, 특히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파국 후 간 나오토(菅直人) 정권의 서투른 대응에 짜증이 잔뜩 나 있던 일본 국민들은 이들 창업가의 기민하고 대담한 이니셔티브를 환영했다. 그들은 일본의 새로운 영웅이 돼가고 있다.

 1995년의 한신아와지(阪神淡路) 대지진 당시는 이재민을 지원하는 젊은 자원봉사자들이 일본 사회의 새로운 혁신 세력으로 등장했다. 물론 이번에도 50만 명에 달하는 자원봉사자들이 재해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차이점이라 하면 창업가들의 사회공헌, 그리고 적극적인 정치적 발언이다.

 그들의 관심은 ‘후쿠시마’ 후 일본의 ‘탈원전’과 신에너지 체제로의 전환, 즉 ‘에너지 시프트’에 쏠려 있다. 그걸 비즈니스 측면에서 가속화시키고자 하는 창업가의 투지가 넘쳐난다. 앞으로 전력 발송전(發送電) 분리, 그리고 발전 자유화가 진전되면 이 분야에 많은 창업가가 몰릴 것이다. 재생에너지와 더불어 인간에 대한 안전보장·위기관리, 헬스케어 등의 분야를 포함한 ‘신산업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그걸 견인하는 게 손 사장 스스로 자신을 자조적으로 빗대어 표현하기도 하는, 이른바 ‘돈키호테’의 존재다. 즉 꿈을 꾸는 혁신자의 존재다.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가 바로 그랬다. 파나소닉은 건전지, 샤프는 라디오, 도요타는 자동차 분야로 새롭게 뛰어들었다. 재해 직후였기 때문에 세 가지 모두 필수품이었다. 모두가 그 가치를 뼈저리게 느끼던 그런 상품들이었다. 그런 점에서 파나소닉, 샤프, 도요타 모두 돈키호테였던 것이다.

 21세기는 ‘재생에너지 창업가’가 일본을 바꾸는 시발점을 만들 것이다. 다만 일본 재생을 위해선 그들의 꿈을 실현시키는 데 필요한 정치적 지지세력과 토대를 만들어야만 한다. 현 시점에선 다음과 같은 3개의 토대가 탄생하게 될지 모른다.

 첫째로 재생에너지 창업가들의 움직임에 고무된 젊은 세대로부터 일본판 그린(Green· 녹색정당)이 등장할 가능성이다. 둘째는 하시모토 도루(橋本徹) 오사카부 지사, 가다 유키코(嘉田由紀子) 시가현 지사와 같이 ‘탈원전’을 내걸기 시작한 지사의 출현이다. 셋째로 파나소닉·샤프를 중심으로 한 간사이 비즈니스군(群)이다. 리튬 전지, LED 등 간사이는 재생에너지 기술의 집적(集積)기지다. 대지진 후 도쿄 일극화를 해소해야 한다는 움직임과 더불어 간사이의 부활이 ‘그린’을 재촉하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에 맞선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거세질 게 틀림없다. 도쿄전력을 비롯한 9곳의 전력회사, 경제산업성과 자원에너지청, 게이단렌(經團連) 등 을 중심으로 한 ‘원전추진족(族)’과 자민당, 민주당 안의 ‘전력족’과 같은 구체제(ancient regime)가 ‘탈원전’에 제동을 걸면서 가로막고 나설 것이다.

 민주당과 자민당의 ‘간 끌어내리기’, 그리고 대연립 획책 배경의 하나로 이런 구체제의 음모를 지적하는 분석도 있다. 간 총리가 지난달 G8 정상회의에 출석하기 전 손 사장과 긴밀하게 연대하면서 ‘탈원전 노선’을 속속 밝혔던 시점 언저리부터 ‘간 끌어내리기’의 기세가 격렬해졌다는 점도 그런 관측을 낳고 있다.

 전후 일본은 수력→석탄화력→석유화력→원자력발전으로 세 번의 에너지 혁명을 경험했다. 세 차례 모두 기존 세력과 신흥세력의 치열한 정치적 투쟁이 수반됐다. 이번은 네 번째 에너지 혁명이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아니 그 이상의 치열한 권력투쟁이 예상된다.

 누가 앞으로 일본을 통치하건 에너지 시프트의 과정에서 도쿄전력의 발송전 분리, 발전 자유화, 전력회사 9곳의 지역독점체제 해체, 원전 및 핵연료 사이클의 국가관리, 재처리 추진 재검토, 그리고 재생에너지 보급 가속화와 같은 큰 정치적 결단을 해야만 한다.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전 아사히신문 주필)
정리=김현기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