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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공짜점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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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똑같은 일도 시각에 따라 호칭이 변하는 법이다. 학생들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점심이 그런 예다. 영어로는 똑같은 ‘프리런치(free lunch)’지만 ‘공짜 점심’ ‘무상 급식’ 중 어느 걸 택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확 달라진다.

 공짜 점심이 등장한 건 19세기 말 미국 남부였다. 뉴올리언스 등에서 술 한잔을 시키면 점심이 거저인 술집들이 생겨났다. 최고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술 한잔보단 비싼 음식을 내놨다. 공짜 점심에 혹해 들어온 손님이라도 대개 술을 더 시켜 본전을 뽑고도 남을 거란 계산에서였다. 혹 밥만 축내고 가더라도 길게 보면 단골을 만드는 일이었다. 결국 공짜 점심은 일종의 미끼 상품이었던 셈이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There is no free lunch)”란 격언은 이렇게 나왔다.

 단순한 상술에서 비롯됐지만 이는 의외의 사회현상을 낳는다. 공짜 점심이 흔해지자 아예 이걸로 연명하는 빈곤층이 생겨났다. 특히 금광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왔다 빈털터리가 된 부랑자들 사이에선 술집의 공짜 점심은 자선단체의 무상급식과 다를 바 없었다. 맘 좋은 주점에선 가난한 이들에게 아예 술 없이도 점심을 줬다. 1894년 시카고에선 하루 6만여 명이 공짜 점심으로 끼니를 때웠다. ‘공짜 점심꾼(free lunch fiend)’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하나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공짜 점심을 즐기려면 술 한잔은 사 마셔야 한다는 게 문제였다. 음주 풍조를 조장한다는 거였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1896년 뉴욕주에선 법으로 공짜 점심을 금하기도 했다. 이런 탓에 공짜 점심엔 다분히 부정적 뉘앙스가 배어 있다.

 반면 무상 급식엔 건강한 배려가 스며 있다. 무상 급식을 처음으로 도입한 건 영국이다. 1944년 영국 정부는 학생들에게 전면적인 급식을 실시하면서 빈곤층 자녀들에겐 돈을 안 받았다. 그러다 대처 총리 집권 후인 80년 급식제도 자체가 폐지되고 일반 업자들이 학교 내에서 점심을 팔기 시작했다. 그러자 학생들이 먹는 점심의 질은 형편없이 떨어졌다. 조사 결과 50년대 때보다 요즘 청소년들의 체내에 더 많은 지방과 당이 축적돼 있는 걸로 나타났다.

 전면 무상 급식을 둘러싼 정치 공방이 점입가경이다. 이를 두고 머잖아 서울시 주민투표까지 실시될 기세다. 승패의 열쇠는 결국 시민들이 포퓰리즘에 영합한 공짜 점심으로 볼지, 아니면 건강한 무상 급식으로 여길지에 달렸다.

남정호 국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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