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실비실 미국 경제…앞으로 5년 더 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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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위기가 씨줄과 날줄처럼 교차하는 곳이 바로 미국 월가다. 투자의 귀재인 워런 버핏은 “이런 곳에서 생존 자체가 능력의 증거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케빈 로건(62·사진) HSBC 미국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1984년 이후 27년 동안 월가에서 살아남았다. 이런 그가 한국을 찾았다. 중앙일보가 15일 단독으로 그를 인터뷰했다. 다시 화두가 된 미 경제 앞날을 가늠해보기 위해서였다.

 -요즘 한국 투자자들은 미 경제의 더블딥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걱정할 만하다. 미국 경제는 지금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더블딥 확률은 20~25% 정도라고 생각한다. 높은 수준은 아니다.”

 -20~25%라고 말한 근거가 뭔가.

 “내가 보기에 미 경제는 2.5~3% 정도 성장할 듯하다. 별일이 없으면 그렇다는 얘기다. 여기에다 국제 원유값 상승과 동일본 대지진 등의 변수를 감안해 확률을 추정했다.”

 -미 경제가 혼란스럽다고 했는데 무슨 말인가.

 “긍정적인 점과 부정적인 점이 뒤섞여 있다. 금리는 아주 낮다. 미 기업들은 현금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첨단 설비 투자를 계속 할 듯하다. 수출도 좋은 편이다.”

 -부정적인 요인들은 무엇일까.

 “국제 원유값이 너무 올랐다. 미국 휘발유 값은 1갤런(4.54L)당 4달러를 육박한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미국 자동차 생산이 올 2분기에 10% 정도 줄었다. 일본 부품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서다.”

 전문가들은 고유가나 동일본 대지진 같은 사건을 일시적인 충격이라고 한다. 오래 지속돼 장기적인 트렌드를 바꿔놓을 만한 사건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런 일시적인 사건이 진정되면 미 경제는 탄탄하게 성장할 수 있을까. 로건은 “더블딥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해서 미 경제가 탄탄하게 성장한다는 말은 아니다”고 말했다

 -무슨 뜻인가.

 “역사적으로 미국에선 유동성 거품 기간 만큼 유동성 수축 기간이 이어졌다. 유동성 거품은 2001년 이후 7년 동안 이어졌다.”

 -이번에도 유동성 수축 기간이 7년 동안 지속될 것이란 말인가.

 “유동성 수축이 2009년 시작됐다고 보면 2016년까지 디레버리징(부채 축소) 작업이 계속될 듯하다. 더블딥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미 경제가 예년의 활력을 되찾기도 쉽지 않을 듯하다.”

 -두 차례 양적 완화로 디레버리징 움직임이 줄지 않았을까.

 “2000억 달러를 풀었다고 치면 기준 금리가 0.25%포인트 낮아진 것과 같다. 6000억 달러를 푼 2차 양적 완화로 기준금리가 0.75%포인트 떨어진 셈이다.”

 -도대체 실질 금리가 몇 %라는 말인가.

 “현재 미 기준금리는 0.25%다. 양적 완화를 감안하면 사실상 -0.5%다. 여기에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실질 금리는 더 낮다. 그런데도 양적 완화로 푼 돈이 모두 미국 기업과 가계에 흘러간 것은 아니다. 돈이 흘러가는 채널, 달리 말해 통화정책 전달경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3차 양적 완화를 해도 소용없단 말로 들린다.

 “기대한 만큼 크지 않을 수 있다. 버냉키는 3차 양적 완화를 하지 않을 계획이다. 그는 당분간 경제 상황을 지켜볼 것이다.”

 -주제를 바꿔 미 연방정부 부채 한도가 확대될 듯한가.

 “미 공화당이 분열돼 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리더십도 제한돼 있다. 합의가 안 된 이유다. 하지만 위기의식이 고조되면 막판 타결이 이뤄질 듯하다. 나는 8월 전후엔 해결될 것으로 본다.”

 -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세계 경제에 퍼펙트 스톰 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세 가지 위기가 동시에 발생해야 퍼펙트 스톰이 발생한다. 루비니는 유럽 국채위기, 미 재정위기, 중국 경착륙이 한꺼번에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위기들이 실제 존재하기는 하지만 순간에 세계 경제를 뒤흔들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글=강남규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케빈 로건=1949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코넬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84년 씨티은행에 들어가 미 경제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이후 영국계 투자은행 드레스데너클라인워트와 스위스계 금융그룹 UBS를 거쳐 2010년 HSBC에 합류했다. 월가에서 그는 자산운용사인 노던트러스트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폴 캐스리얼 등과 함께 ‘무드셀라’로 통한다. 오랜 세월 미 경제를 담당해 성경 속 최장수 인물인 무드셀라와 비슷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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