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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스페셜 - 수요지식과학] 신이 숨긴 반물질, 16분 훔친 인류 미래는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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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스위스 제네바 근교에 있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물질(입자)을 찾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실험장비(거대강입자가속기·LHC, 둘레 27㎞)를 돌리는 곳이다. 작디작은 입자 속에 숨은 크나큰 우주의 비밀을 풀기 위해서다. 과학자들은 열흘 전 CERN이 “16분간 포착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반물질(反物質·antimatter)을 그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다 . 도대체 CERN이 붙잡았다는 반물질은 무엇이고, 어떤 비밀을 품고 있는 걸까. 주요 내용을 Q&A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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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반물질이란.

 A: 물질은 원자, 원자는 입자(양성자·중성자·전자)로 구성된다. 반물질은 입자와 성질은 같고 전하값은 반대인 반(反)입자(반양성자·반중성자·양전자)로 된 물질이다. 우주 탄생의 순간(빅뱅)엔 같은 수의 입자와 반입자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현재 우리 주위엔 입자·물질뿐이다. 반입자·반물질이 사라진 이유는 입자물리학의 최대 미스터리 중 하나다.

 CERN은 현재 2개의 양성자 빔을 광속(光速)에 가깝게 가속, 정면충돌시키는 실험을 하고 있다. 빅뱅 상황을 ‘인공적으로’ 재현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주 탄생의 신비를 밝히는 한편, 그 진화 과정을 규명하는 게 목표다. 기본 모형 입자 가운데 유일하게 발견되지 않은 힉스 입자(일명 ‘신의 입자’)를 찾는 게 전자라면, 빅뱅 직후 사라진 반물질을 연구하는 게 후자다.

 Q: 어떻게 만들고 붙잡나.

 A: CERN의 알파(ALPHA) 연구팀이 이번에 붙잡았다고 발표한 반물질은 반(反)수소다. 반양성자와 양전자 각 1개씩으로 이뤄진 가장 단순한 구조의 반물질 원자다.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LHC로 가속한 양성자 빔을 구리·이리듐 같은 금속에 충돌시켜 반양성자를 만든다. 이것을 감속기(減速器)로 유도해 속도를 떨어뜨린 뒤, 방사성 나트륨 에서 나온 양전자와 충돌시키면 미량의 반수소 원자가 만들어진다.

 이때 중요한 것이 진공(眞空)과 자기장(磁氣場), 온도다. 반물질은 물질과 만나면 빛을 내며 함께 사라진다(雙消滅·쌍소멸). 그 때문에 실험장비 내부는 공기와의 접촉을 막기 위해 진공으로 유지된다. 또 강력한 자기장으로 반입자들을 조종해 실험장비 내벽과 닿지 않도록 한다. 반입자의 경우 이런 방법으로 과거 최고 57일 동안 잡아둔 기록이 있다.

 하지만 반수소 원자의 경우는 상황이 더 복잡하다. 전하값을 갖는 반양성자(-)와 양전자(+)와 달리 전기적으로 중성이다. 이 때문에 자기장으로 조종이 거의 불가능하다. 알파팀은 이 문제를 극저온 냉동기술로 풀었다. 온도가 낮아지면 원자의 움직임이 둔해진다. 연구팀은 액체 헬륨으로 내부 온도를 0.5K(켈빈), 즉 섭씨 약 -272도까지 낮춰 반수소의 소멸을 늦추는 데 성공했다.

 Q: 다음 단계는.

 A: 만들자마자 사라져 버리던 반수소를 붙잡아뒀다는 것은, 그 속성을 연구할 시간을 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알파 연구팀은 다음 단계로 반수소 원자에 레이저나 극초단파를 쏴, 방출·흡수되는 빛의 스펙트럼을 분석하는 분광분석(分光分析·spectroscopic analysis)을 준비 중이다. 그 결과를 분석하면 반수소 원자의 성질을 정확히 규명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를 수소원자와 비교해 예상대로 대칭을 이루는지(전하값을 제외한 모든 값이 일치하는지) 따져볼 예정이다. 만약 조그만 차이라도 발견한다면 물리학 교과서를 새로 써야 한다.

 Q: 우주 진화와의 관계는.

 A: 물리학자들은 빅뱅 직후 (적어도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우주 안에서) 반물질이 사라진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추측한다.

첫째, 우주 어딘가에 물질과 쌍소멸을 피한 반물질로만 된 반(反)우주가 존재할 수 있다. 1976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새뮤얼 팅 미 MIT대 교수가 이 같은 생각의 대표주자다. 그는 우주를 떠도는 반물질을 찾는 알파자기분광계(AMS-02)의 국제우주정거장(ISS) 설치 를 주도했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찾기 위해서다 (본지 5월 18일자 8면).

둘째 애당초 물질이 반물질보다 조금 더 많이 만들어져 1대1 쌍소멸 후 소수의 물질만 남았을 수도 있다. 즉, 빅뱅 땐 동수의 입자·반입자가 만들어졌지만, 곧바로 그 균형이 깨져 물질이 더 많이 만들어졌을 것이란 추측이다.

CERN의 분석 결과 반수소가 수소와 대칭을 이룬다면 우리가 보는 물질만큼의 반물질이 우주 어딘가에 있을 것이란 첫 번째 추측이, 그러지 않고 대칭이 깨진다면 두 번째 추측이 맞을 가능성이 크다.

김한별 기자
※도움말=서울대 물리학부 최선호 교수, 세종대 물리천문학부 이희원 교수.
※참고=『LHC, 현대 물리학의 최전선』(이강영)

◆쌍소멸(mutual annihilation)=쌍을 이루는 물질·반물질이 만나 에너지를 방출하며 함께 사라지는 현상. 특수상대성이론(E=mc²)에 따르면 반물질 1㎏이 내는 에너지는 약 250억kWh 다. 전 세계에서 90분간 소비되는 에너지양을 합친 것과 같은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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