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노조 환골탈태 약속 지켜보겠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양대 노총 위원장들이 고개를 숙였다. 걷잡을 수 없는 노조 비리 앞에 더 이상 버틸 재간도 없었다. 검찰에 따르면 노조 지도부가 룸살롱에서 건설업자를 만나 뇌물 10억원을 먼저 요구하고, 택시기사 복지기금은 6억5000만원의 뒷돈과 맞바꾸었다. 수사망이 좁혀지자 말 맞추기로 범행 은폐를 시도하고 돈세탁까지 부탁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노총 위원장은 이번 사태에 대해 "한국노총 역사상 최대 위기"라며 "조합원과 국민에게 부끄럽고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민주노총 위원장도 "비리에서 자유로운 노조가 없다고 할 정도"라며 "노조가 권력화.관료화하면서 발생한 비리"라고 인정했다.

뒤늦게나마 노조 내부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니 그나마 다행이다. 비리 재발을 막기 위해 외부 감사제도 도입과 비리 연루자의 노조임원 금지, 임원급 노조간부의 재산공개를 약속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따지고 보면 민주화 이후 노조는 오랫동안 성역이었다. 투쟁 지상주의의 노조 앞에 검찰이나 경찰조차 무력했다. 정치권과 언론도 노조에는 한쪽 눈을 감아온 것이 사실이다. 점차 양대 노총과 대기업 노조는 공룡화했다. 사회나 정부가 노조의 권력화를 묵인해 온 셈이다. 그러나 노조도 '권력은 부패하고,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진리를 피해가지 못했다. 여기에 노조간부의 특권의식과 사욕이 겹치면서 걷잡을 수 없는 비리 사태로 이어진 것이다.

이번 양대 노총의 자성은 도마뱀 꼬리 자르기로 끝나선 안 된다. 대국민 사과문의 다짐대로 그야말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노조는 스스로 "서민 대중의 권익보호와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집단"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려면 조직과 투쟁을 빌미로 불법을 일삼는 내부 범죄세력과 단호하게 결별부터 해야 한다. 채근담에 따르면 지극히 더러운 굼벵이가 매미가 되고 썩은 풀에서 반딧불이가 자라나는 과정을 환골탈태라 했다. 그만큼 어렵고 힘들다. 과연 양대 노총이 건강한 노동운동 세력으로 환골탈태하는지를 지켜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