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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경영혁명.co.kr] '모자이크 고용'이 정착된다 (3)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신생 인터넷 벤처인 프리챌에 최근 입사한 이승규(26·웹기획 전문가) 씨는 술집에서 처음 만난 이 회사 사장과 의기투합해 다음날 아침부터 출근했다.

친구 소개로 호프집에서 열린 임직원 맥주 회식에 자정 무렵 합류한 李씨는 전제완(37) 사장과 새벽 4시30분까지 맥주잔을 기울이며 토론을 나눈 뒤 입사를 결심,이력서 한장 없이 오전9시 회사에 나와 책상을 배정받았다.

이 회사 직원 70여명 가운데 이런 식의 ‘술잔 면접’으로 입사한 이들은 20여명.全사장은 “사람은 필요한데 낮에는 바빠서 면접할 시간조차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울 테헤란로 일대에서는 이런 식의 ‘격식 파괴 면접’‘스피드 채용’이 이미 낯설지 않다.능력만 갖추면 학력·전공·나이를 따지지 않는다.

서갑수 한국기술투자 사장은 “창의성과 속도가 중시되는 e-비즈니스 분야에선 엇비슷한 범재(凡才) 여럿보다 개성이 뚜렷한 준재(俊才) 한사람이 더 소중하다”고 말했다.

네띠앙은 ‘N(넷) 세대’취향 파악을 위해 고교 1년생에게 ‘서비스개선위원장’이란 직함을 주었다.컴퓨터바이러스 백신업체 하우리도 1998년부터 함께 일해 온 고교생을 이달 졸업과 함께 주임연구원으로 승진시켰다.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에서도 중학교를 중퇴한 10대 후반 인터넷 매니어가 좋은 학벌의 연구원들과 섞여 일하고 있다.

대기업들도 생존 차원에서 벤처식 채용방식을 적극 벤치마킹하기 시작했다.대규모 신입사원 공채 같은 ‘선단식 채용’을 삼가는 대신,단순업무직에서 전문직까지 다양한 계약제를 도입하고 실리콘밸리 주재·재택 사원 등 근무방식도 제각각으로 하는 등 ‘모자이크형 채용’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벤처식 채용만이 살길

최근 화제를 뿌린 PC통신 유니텔의 채용방식이 대표적 사례.‘창의성있는 사람이면 응모자격이 있다’는 이색 공고를 내자 중학생에서 변호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이 구름처럼 몰렸다.

유니텔처럼 ‘학력·나이·전공 불문’을 내건 대기업의 채용공고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데이콤은 최근 음악·외국어·개그 등 다양한 분야의 인터넷방송국 웹자키를 뽑으면서 자격제한을 없앴다.

삼성물산은 20대 초반의 아이디어를 수혈하기 위해 ‘주니어 벤처과거’를 열어 ‘급제’한 사람들을 채용키로 했다.

제일기획은 언론사 신춘문예 당선자 5명을 광고 카피라이터로 특채했다.에스원은 ‘대도’(大盜) 조세형씨를 범죄예방 교육전문가로,해커 출신들을 인터넷 보안 전문가로 두고 있다.

명문대학 인기학과에 눈독을 들이던 대기업 인사담당자들이 지방대학의 유망 창업동아리 사냥에 나선 것도 달라진 풍속도다.

인터넷 전문가 채용 때는 이력서의 전직 경력난이 빽빽한 사람들을 우대하는 풍조가 생긴 것 역시 ‘충성도’를 중시하는 대기업의 보수적 채용문화가 바뀌는 증거다.

유니텔 오창훈 홍보파트장은 “해당 분야에서 2년 이상 근무해야 경력직 응시대상이 됐으나 하루가 멀다하고 발전하는 인터넷 분야에서는 몇달 경력도 인정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채용 절차도 간소화되는 추세다.LG정보통신·삼성SDS 등은 새로 입사한 연구개발(R&D) 인력은 연수원등의 합숙 교육 없이 바로 현장에 투입하는 일이 허다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5단체는 바뀐 채용문화에 맞게 대기업 신입사원 채용 때 나이 제한을 두지 말도록 계도하기로 최근 합의했다.

◇달라지는 보상체계

대기업들이 우수 인력의 벤처기업행을 막기 위해 소특옵션·성과급 등 다양한 인센티브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특히 벤처행 엑소더스가 두드러진 전자·정보통신 등 e-비즈니스 관련 기업들에서 두드러진다.유망한 신규사업을 벌일 때는 직원들에게 최우선 참여 기회를 주는 것이 그중 하나.SK상사는 지난해 말부터 중국지역·인터넷 전문가 등을 사내 공모해 20여명을 뽑았다.

홀대받던 계약직이 ‘고액 연봉’과 동일시되는 등 고용관행도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삼성물산은 올들어 프로선수 개념처럼 ‘프로계약제’를,LG정보통신은 ‘사이닝 보너스’제도를 각각 도입해 정규직 직원보다 훨씬 높은 성과급을 보장키로 했다.

SK상사는 5년 안에 전 임직원을 계약제로 전환하고,억대 연봉자를 1백명 이상 키우겠다는 계획.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가 2천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지난해 임금실태를 조사한 결과 급여인상률을 개인별로 달리한다는 곳이 27.1%로 전년 15.7%보다 크게 늘었다.

‘샐러리맨도 큰 돈을 만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는 파격적 인센티브 제도도 확산되고 있다.LG전자는 최근 TV 신제품을 히트시킨 개발팀에 1억8천만원의 포상금을 주었다.이 회사와 삼성석유화학 등은 1인당 포상금 한도를 최근 1억원으로 대폭 늘린 바 있다.

삼성물산도 이달초 ‘이익배분제’를 처음 실시해 성과가 뛰어난 일부 사업부문 간부는 3천만원 가까운 돈을 받았다.올해 초부터는 벤처사업 전담부서인 골든게이트가 투자할 때 관련 실무자들이 자기 돈을 함께 투자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노동연구원 허재준 연구위원은 “벤처식 채용문화는 관료주의와 연공서열 위주의 대기업 체질을 핵심 역량 중심의 조직으로 변모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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