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악몽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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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호 10면

새벽에 남자는 잠을 깬다. 또 악몽을 꾼 것이다. 만일 어떤 꿈이 악몽이라면 그것은 꿈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더 무서운 것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남자는 꿈에서 자신의 일생을 본다.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인생을 탕진해버린 자의 일생. 어쩌면 남자는 글쓰기에 작은 재능이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노력하지 않았다. 자신이 글을 쓸 수 없는 온갖 핑계를 대며 허송세월했다. 어쩌면 남자는 핑계를 대는 데 큰 재능이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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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오줌을 누고 거울 속 자신을 본다. 청년의 남자가 경계했던 우울하고 피곤한 중년의 얼굴. 저것은 누구의 얼굴인가? 남자는 다른 사람의 생을 대신 살고 있다는 절망에 빠진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다. 남자는 세수한다.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켠다. 커서가 깜빡인다. 글을 쓰고 싶은데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회사에 출근해서 처리해야 할 업무 생각뿐이다.

물론 직장에 다니면서 틈틈이 글을 쓸 수 있다. 남자도 그렇게 믿었다. 의지만 있다면 퇴근 후에 얼마든지 글 쓰는 시간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현실은 의지를 조롱한다. 야근과 술자리와 피곤이 남자의 의지를 허물어뜨린다. 가끔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쓴 적도 있다. 기껏해야 조각 글. 남자는 짧은 글밖에 쓸 수 없다. 호흡이 긴 글쓰기는 꿈도 못 꾼다. 그런 글을 쓴 작가의 책을 읽을 때마다 남자는 중얼거린다. 나도 직장 그만두고 글만 쓰면 이 정도는 쓸 텐데.

남자는 직장을 그만둔다. 이제는 글쓰기에 전념할 수 있다. 아침부터 밤까지 오롯이 집에서 글만 쓰는 것이다. 그런데 집에 있으니 할 일이 많다. 베란다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해야 한다. 장도 봐야 한다. 재활용 쓰레기 분리도 하고 반상회에도 나가야 한다. 각종 공과금과 세금 처리도 해야 한다. 집에는 남자의 글쓰기를 방해하는 것들이 직장보다 더 많다. TV도 있고 컴퓨터도 있고 소파도 있고 침실도 있다. 무엇보다 ‘좀 있다 쓰지’라는 핑계가 있다.

남자의 글쓰기는 전혀 진전이 없다. 노트북에는 항상 커서만 깜빡인다. 어쩌다 집중해서 한두 줄 쓸라치면 아내와 아이들이 “뭐 써요?”하면서 말을 건다. 산만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기 시작하면 글쓰기는 끝장이다. 남자는 대답 대신 한숨을 쉰다.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 했어. 그랬으면 나도 인간의 심연을 정면으로 다루는 문제작을 쓸 수 있을 텐데.
남자는 집을 떠난다. 이혼하거나 가출한 것은 아니고 집에서 꽤 떨어진 곳에 작업실을 얻는다.

시오노 나나미가 쓴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에 나오는 ‘원래 프라티노라고 부르는 수도원 식당용 식탁’과 비슷한 책상도 하나 장만한다. 그러니까 ‘두께가 7, 8㎝는 좋이 되는 널빤지가 보통 길이 2m, 폭 1m는 되며, 이것을 두 개의 굵은 나무다리로 받치고, 이 두 개를 다른 굵고 긴 나무로 밑에서 고정시켜 놓은’ 책상에 남자는 앉는다. 준비는 다 끝났다. 글만 쓰면 된다. 이제 불후의 명작을 쓰는 일만 남았다. 남자는 노트북을 켠다. 커서가 깜빡인다. 깜빡이고 또 깜빡인다. 남자는 여전히 한 줄도 쓰지 못한다. 새벽에 남자는 잠을 깬다. 또 악몽을 꾼 것이다.


김상득씨는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아내를 탐하다』를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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