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철의 ‘부자는 다르다’] 부자들 ‘80% 서민’ 고민할 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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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불공평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자는 KTX보다 빠르게 물질의 동그라미 숫자를 늘려가는 반면, 빈자는 점점 더 빚의 수렁으로 빠져들어갑니다. 저는 산업화와 자본화·세계화·정보화가 야기한 빈부격차 현상을 ‘차이 증가 장치(Difference Accelerating Mechanism)’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재산 1000억원이 넘는 부자는 거의 없던 시절이 계속됐습니다. 1조원 재산을 넘는 부자가 생긴 것이 얼마 전이었죠. 이제는 10조원을 넘보는 거부들도 탄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 가구 중에서 하위 약 30% 정도는 재산이 3000만원이 안 됩니다. 전체 가구의 평균 재산은 약 2억7000만원 정도입니다. 또 가구의 총 재산이 5억원이면 상위 20% 정도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은 버는 것보다 빚 갚는 것이 더 많아지는 판국입니다. 그들에게 30년 전보다 나아진 것이 있다면 ‘수제비’에서 ‘돼지갈비’로 옮아갔다는 정도입니다.

 이자율이 높아지면 저축액 많은 부자는 금 덩어리가 늘어나고, 부채 많은 빈자는 빚 덩어리가 늘어나는 ‘차이 확대 현상’이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1000원짜리가 뭔지 모르는 거부의 손자와 그 돈이 없어 조각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빈자의 손녀, 백만원짜리 수표를 갖고 다니며 쇼핑하는 거부의 딸과 한 달 80만원 벌려고 수천 번 굽실거리는 빈자의 딸이 공존합니다.

 평균의 개념이 작용한 ‘2만 달러 국민소득’은 전체 인구의 80% 정도에겐 그냥 ‘숫자’에 불과할 뿐입니다. 스스로 빈자라고 느끼는 분들은 부자들만큼 정신적으로 강하지 못해 꿈을 향해 몰두하지 못하고, 물질 획득의 진수 또한 터득하지 못해 쳇바퀴만 계속 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부(富)의 점프업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로켓보다 빨리 발전하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컨대 제가 만난 한 부자는 이런 소리를 하더군요. “교수님. 저도 재산이 30억원을 넘어 보니까 금방 돈이 불더라고요. 이제는 교수님 지적대로라면 대한민국에서 1% 안에 충분히 듭니다. 그런데 저를 뺀 모든 친가와 처가 가족은 빚에 허덕입니다.” 저는 이렇게 응수했습니다. “그럴 것입니다. 그분들이 스스로 올라설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 부자는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거창한 부자의 이름(이를 테면 경주 최부잣집, 유일한 박사, 미국의 록펠러, 스웨덴의 발렌베리)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부자들이 국민 80%에 대한 반대 급부를 충분히 고민해야 할 때라고 봅니다. 정부의 따뜻한 손길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정부 소득의 상당수가 스스로 빈자로 생각하는 80% 사람들이 내는 온갖 세금(유류세·주세·부가세 등)에서 나옵니다. 납세자들에게 그걸 어느 정도 돌려주는 것도 상당히 필요하다고 봅니다. 선거용 대책이 아니라, 자신들이 외쳐대는 구호의 기본대상인 국민 80%를 위한 진심 어린 서민용 정책이 용솟음쳐 나와야 할 것입니다. 사회적 논의 대상인 ‘급식비 지원’과 ‘등록금 지원’도 논의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으로, 그리고 세계적으로 빈부격차가 극에 달했을 때 ‘부자들은 타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또 정부는 폭동과 혁명에 직면했습니다. 수천 년의 기록 역사에서 항상 나타났던 처절한 투쟁의 심원은 빈부 문제였습니다. 갈수록 가속화하는 ‘차이 증가 장치’가 앞으로 어떻게 움직여 갈 것인지에 대한 혜안적 해결책이 필요합니다.

한동철 서울여대 경영학과 교수·부자학연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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