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조' 기업들 현금이 넘쳐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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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지난해 국내 기업의 수익성이 일본보다 앞서고 미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수익 증가에도 투자를 늘리지 않는 바람에 국내 제조업체가 보유한 현금이 전년보다 10% 증가한 66조원에 달했다. 이 때문에 국내 제조업의 부채비율은 4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16일 한국은행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04년 기업경영분석을 발표했다. 기업경영분석은 연간 매출액 25억원 이상인 5437개 업체의 경영상황을 분석했다.

◆ 경영 지표 크게 개선=기업이 얼마나 장사를 잘했는지를 나타내는 매출액경상이익률은 제조업의 경우 4.7%에서 7.8%로 높아졌다. 지난해 제조업체가 물품 1000원어치를 팔았을 때 78원을 남겼다는 의미다. 이는 일본(2003년 39원)보다 높고 미국(2004년 90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영업이익으로 금융비용을 충당하는 능력을 나타내는 이자보상비율도 1년 사이 351%에서 483%로 높아져 일본(2003년 360%)과 미국(2004년 제조업 397%)을 앞섰다.

전체 조사 대상 기업의 부채비율은 131.3%에서 114%로 1966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낮아졌다. 제조업의 부채비율은 123.4%에서 104.2%로 65년 이후 최저 수준이었다. 제조업 부채비율은 일본(145.4%).미국(141.2%)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 투자 활동은 위축=경영지표 개선이 꼭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재무지표가 좋아진 게 마땅히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해 현금을 사내에 유보하고 외부에서 돈을 덜 빌린 덕도 있기 때문이다. 제조업의 총자산 대비 현금 비중은 99년 5.3%에 불과했으나 지난해에는 9.9%로 늘어났다. 보유 현금은 2003년 60조원에서 지난해 66조원으로 불어났다.

재무 관련 지표가 좋아진 것과 달리 투자 관련 지표가 여전히 부진한 게 이를 입증한다. 기계설비 증가율은 2001년과 2002년에는 2년 연속 전년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하다 2003년(0.6%)과 2004년(3.2%)에는 플러스로 돌아섰지만 회복세가 미미하다. 그 결과 유형자산이 총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년 연속 하락했다.

◆ 경기 양극화 지속 우려=수출과 내수의 양극화가 여전히 심하다. 1000원어치를 팔았을 때 남긴 이익이 수출 비중 50% 이상 기업은 93원이었지만, 20% 미만 기업은 47원에 그쳤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도 여전했다. 대기업은 1000원어치를 팔아 102원을 남긴 반면 중소기업은 33원을 남겼다.

한은 김병화 경제통계국장은 "투자가 활성화하고 경기 양극화가 해소되지 않는 한 내수 회복과 일자리 창출을 크게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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