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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널렸던 빈 땅에 꽃 심어 쉼터 만들었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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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면

꽃밭 만드니 찡그린 얼굴에 미소 가득

꽃으로 가득한 봄날이 기울어질 무렵 천안 청수동 극동2차 아파트는 다시금 봄이 시작된다. 아파트 뒤편 유휴지를 화단으로 가꾸기 시작하면서부터 해마다 이맘때면 주민들이 꽃 심기에 분주하다.

 5년 전만 해도 이곳은 쓰레기로 가득한 곳이었다. 비양심적인 주민들이 외진 곳이라는 점을 악용해 나무, 가구, 타이어, 고장난 장난감 등 각종 생활쓰레기를 버렸다.

 노인회가 고민 끝에 화단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장유복 노인회장이 가장 먼저 팔을 걷어 붙였다. 리어카를 잡고 거리로 나섰다. 인근 보도블록 교체 공사 현장에서 헌 블록을 30장씩 싣고 매일 언덕배기를 넘어 화단까지 날랐다.

천안 청수동 극동2차 아파트 주민들은 꽃이 만발한 쉼터에서 아침 저녁으로 산책하며 정을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강선구 총무, 이선재 노인회 고문, 강문효 입주자대표, 장유복 노인회장, 남명희 감사, 황규선 통장, 이지현 관리소장 [조영회 기자]

3000장의 블록을 모아 화단 경계를 만들었지만 다음 일이 문제였다. 꽃 살 돈이 없었다. 장 회장이 사비를 털어 꽃을 사 심기 시작했다. 쓰레기 더미가 가득한 공간은 아름다운 쉼터로 변했고 동네 명물로 재탄생 했다.

 1300여 ㎡ 자투리땅이 조금씩 꽃밭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며 주민들도 더 이상 쓰레기를 버리지 않았다. 안락하고 쾌적한 휴식공간으로 바뀐 모습을 보고 옆 동네 주민들도 감탄했다.

 장 회장 노력에 감동한 주민들이 꽃 심는 일에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올해엔 노인회 회원과 주민들이 가족과 함께 꽃을 심었다. 현재 이곳에는 주민들이 정성껏 가꾼 메리골드, 맨드라미, 과꽃 등 30여 종이 사람들을 반기고 있다. 장 회장은 주민들이 꽃 내음을 맡으며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매일 새벽 꽃밭 가꾸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산책로와 함께 장수아파트로 유명

이선재 노인회 고문

강문효 입주자대표는 20년 째 이곳에서 살고 있다. 강 대표처럼 십 수년 이상 거주하는 주민이 적지 않다. 이유 중 하나가 아파트 단지와 붙어 있는 수도산 때문이다. 아파트 단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도산은 운동, 산책코스가 잘 갖춰져 있어 주민들은 틈틈이 산을 오르며 건강을 챙기고 있다.

 평탄한 산책로에 야생화가 가득해 산책이 지루하지 않다. 배드민턴장도 있어 주민간 소통의 장소로도 한몫하고 있다. 산새들의 울음소리와 시원한 바람이 산을 오르는 주민들의 기분을 상쾌하게 만든다.

 주민 송남선씨는 최근 산자락에 골프연습장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무료 강습을 하고 있다. 공동주택 특성상 딱딱한 콘크리트로 지어진 곳에서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이 인상적인 단지다.

방학 때마다 충효교실 열어

청수 극동2차 아파트는 매년 방학이 되면 단지 내 아이들을 대상으로 충효교실을 연다. 장유복 노인회장이 주관해 관리동 주민공동시설에서 30여 명의 아이들에게 효를 가르치고 영어와 한자교실을 운영한다.

 장 회장은 간식을 준비하기 위해 직접 시장에 갈 정도로 아이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올해는 자매결연을 맺은 청수초등학교 학생들이 노인정을 찾아와 어르신과 대화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지현 관리소장은 “510세대 입주민을 위해 꽃을 심고 효를 가르치는 노인회, 화목을 추구하는 부녀회, 살림살이를 맡은 ㈜다하리 소속 관리사무소 직원들의 노력 때문에 삭막할 수 있는 곳이 정을 나누는 곳으로 변했다”며 “꽃 향기 속에 글 읽는 소리가 들리고 이웃과 정겨운 인사를 나누며 포근하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행복한 동네”라고 설명했다.

글=강태우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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