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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다큐 -〈내일은 태양〉〈바람의 아이들〉

중앙일보

입력

감독: 최병화 / 99년 / 한국

〈내일은 태양 1, 2부〉와 〈바람의 아이들 1, 2부〉는 98년 3월 개교한 대안고등학교인 '원경고등학교'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모습을 99년 2월 제1회 졸업식까지 담은 총 4부작의 연작 다큐멘터리이다.

'널리 인간 인간을 복되게 하라.'
고조선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의미는 꼭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말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잊고 지내는 말이다. 하지만 다큐멘터리스트들에게 '인간에 대한 사랑'을 강조한 이 말은 가슴에 늘 품고 살아야 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다큐멘터리가 보여주어야 하는 감동은 인간에 대한 사랑을 모티브로 할 때 가장 극적이기 때문이다.

〈내일은 태양 1, 2부〉 와 〈바람의 아이들 1, 2부〉는 최병화 감독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영화이다. 아울러 1년간 학생들과 선생님들간의 사랑을 통해 감성적, 이성적으로 변화되는 학생들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인간에 대한 사랑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는데 충분하다.

영화를 보며 내게 가장 절실하게 다가온 문제는 원경고등학교의 학생들을 어떻게 불러야하는가 였다. 사람들이 쉽게 사용하는 단어, '문제아'라고 부르기에 그들은 너무나 사랑스런 아이들이었다. 아마도 이 문제는 최병화 감독에게도 어려운 문제였었음에 틀림없는 듯 하다. '바람의 아이들'. 최병화 감독이 내린 결론은 그것인 듯 하다. 결코 쉬지 못하는 바람처럼 떠돌아야만 해야 했고, 늘 자유로워지기를 기대하는 아이들. 하지만 따스한 인간의 사랑을 그리워하며, 누군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원하는 아이들을 그는 '바람의 아이들'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제 나 또한 그들을 '바람의 아이들'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원경고등학교는 1998년 3월 12일 총 53명의 바람의 아이들 그리고 선생님들과 함께 개교를 한다. 〈내일은 태양 1부〉에서는 처음으로 학교를 찾은 아이들의 얼굴을 쫓는다. 그리고 전국 각 지역에서 처음으로 모인 바람의 아이들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1년 내내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며 부대껴야할 친구들의 얼굴을 훔친다. 너무나 평범하게 보이는 아이들. 과연 그들은 아무 탈없이 이곳의 생활에 적응을 잘 할 수 있을까?

"졸업장 따려고요."
"그냥요. 그냥 수업에 들어가기 싫어서 들어가지 않았어요."

1년간의 아이들의 모습을 쫓은 이 다큐는 커다란 덩어리들로 이루어진 이야기들로 구성되어진다. 입학식, 운동회, 스승의 날, 등산, 자살 사건, 편입생 문제, 학교 기물 파괴 사건, 졸업식 등 많은 이야기들이 영화 속에서 나온다. 오랜 기간의 촬영기간과 시간적 구성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구성이다. 그래서 야기된 세세한 설명의 부족은 시청자에게 시간적으로 끊겨진 부분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한다. 시청자들에 대한 세세한 설명이 없으면 왠지 허전하다고 생각하는 한국의 다큐멘터리의 현실상 칭찬해줄 만한 몫이다.

개인적으로 총 4부작의 연작 다큐멘터리 속 여러 이야기들 중에 인상이 깊은 이야기를 꼽으라면 다음 네가지를 말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아이들과의 나이 차로 인한 갈등으로 자신을 '낙동강 오리알'이라고 비유하며 수진(21)이가 집으로 돌아가려 했을 때다. 하지만 그때 후배 남자애들은 수진이가 떠나지 못하도록 그녀를 빨래터에 몇 차례 빠트린다. 짓궂은 장난에 수진이는 화가 났지만 집으로 떠나지는 않는다. 그녀는 낙동강 오리알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두 번째는 입학식 날 마음이 넓어지는 공부를 하겠다던 효성(20)이가 말없이 학교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날이다. 멋쩍은 얼굴로 학교로 돌아온 효성이를 반기는 아이들. 그리고 아이들은 효성이를 수진이에게 했던 것처럼 빨래터에 빠트린다. 그리고 카메라는 학교로 돌아온 효성이가 음악실에서 입학식 날과 똑같이 피아노로 '캐논'을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조금 있은 후 같은 방에서 지내는 후배 동현이가 그의 옆에 앉아 피아노를 함께 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느덧 아이들은 서로에게 배우고 서로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이 장면은 다큐멘터리가 말하고 싶은 바를 함축적으로 가장 잘 보여준 최고의 명장면이다.

세 번째는 편입생 수연(20)이가 학교에 온 날이다. 여학생들은 비좁은 기숙사 방에 그녀가 들어온다는 것에 거부감을 표현하며, 수연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1시간여의 회의가 지난 후 예상외로 그들은 수연이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이유는 자신들이 이곳을 찾을 때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왔고, 수연이 또한 자신들과 똑같은 입장의 아이라는 것이었다. 인간에 대한 사랑을 바람의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고, 실천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지막은 눈물의 졸업식. 대학교에 모두 합격하고, 졸업을 하는 8명의 3학년 학생들과 그들을 다시 원래 왔던 곳으로 떠나보내는 선생님들의 눈물. 그것은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으로 다가오는 장면이다.

다큐멘터리에서 시점은 다큐멘터리의 분위기를 조절하는데 상당한 영향력을 끼친다. 〈내일은 태양 1, 2부〉는 3인칭 시점인 최병규 감독의 시점으로, 그의 나레이션으로 진행된다. 반면에 〈바람의 아이들 1, 2부〉는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원경고등학교 선생님으로 부임한 오설화(26) 선생님의 1인칭 시점으로, 방은진씨의 나레이션으로 진행된다. 개인적으로는 후자에 더 높은 점수를 부여하고 싶다. 휴먼다큐에서 감성적 표현의 전달은, 특히 이 다큐에 등장하는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감성적 표현의 전달은 1인칭 시점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바람의 아이들 2부〉에서 마라톤을 하며 비 내리는 거리를 뛰는 상찬(20)이의 외침이 기나긴 여운을 남긴다. "포기하고 싶지만요. 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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