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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의 음식잡설 ⑦ 화학조미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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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2면

밥상은 늘 금기의 역사로 점철되었다. 인도의 쇠고기, 중동의 돼지고기 터부는 물론이고 브리지트 바르도가 등장한 개고기 논쟁은 한때 백인 혐오의 한 이유가 되기도 할 정도였다(프랑스 영화 따위는 절대 보지 않을 거야!).

 그럼 우리 당대 밥상의 금기는 뭘까. 광우병이 한때의 금기였다면 오래된 배타와 금기의 역사는 ‘L-글루타민산나트륨’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물질이 몸에 해롭다는 믿음은 사실 여부를 떠나 일종의 종교적 신념에 가깝다. 그래서 실제로 이걸 우리는 늘 먹으면서도 뭔가 꺼림칙해 하거나 경원시한다. 이 물질을 놓고 뭔가 합성된 공산품의 뉘앙스를 풍기는 ‘MSG’ 또는 ‘화학조미료’라고 부르는 건 그 예다.

 심지어 이 물질을 주도적으로 팔아온 회사가 신제품에 ‘이 식품에는 MSG를 넣지 않았습니다’고 광고하기까지 한다. 자기의 뿌리를 부정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몸에 나쁜 MSG를 팔았다고 사과문이라도 발표하라면 할지도 모른다. 제조회사까지 이렇게 나오니 국민은 아예 몹쓸 조미료 취급을 한다. 그렇지만 금기와 경원에 의해 사실이 거짓이 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걸 ‘과학’이라고 부른다.

 절대로(!)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알려진 한 식당에서 오후 늦게 밥을 먹고 있었다. 손님이 없는 시간대였는데, 마침 식재료가 반입되고 있었다. 한 직원이 메고 가는 흰색 가마니가 눈에 익었다. 자세히 보니 재미있게도 아기 천사가 그려진 과거 유명 상표의 조미료였다. 설마 직원 음식용으로 비료포대만 한 조미료를 사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래서 맛집 소개 프로그램에 나오는 일부 식당 주인이나 요리사가 ‘화학조미료는 일절 쓰지 않는다’고 강조하다가 망신을 당한다. 미처 치우지 못한 조미료 봉지가 화면에 잡혀 네티즌의 감시망에 걸려들었던 것이다.

 내 식당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나도 금기에 사로잡혀 있기는 마찬가지여서 누군가 내 주방에 들어올 일이 있으면 비밀요원을 시켜 조미료 봉지를 재빨리 치우게 한다. MSG가 건강에 나쁘다는 합리적 근거가 없다고 믿고 있어도, 나는 내가 파는 음식에 ‘화학조미료’를 쓴다고 오해받고 싶지 않다(어디까지나 직원 식사에만 들어가는 것이기는 하다). 나는 이런 태도가 비겁하다고 느끼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그런 조미료를 쓴다는 사실은 위생보다 더 강력한 비난의 재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홍콩에서 최고급 식당을 취재할 일이 있었다. 놀라운 건 MSG를 쓰는 데 어떤 도덕적 부담이 없었다는 점이다. 1인당 10만원이 넘는 고급 식당도 마찬가지였다. 홍콩의 유력 기관에서 발매한 식당안내서에는 아예 ‘MSG 사용 여부’라는 항목이 따로 있었다. 물론 상당수 식당에 ‘YES’라고 기록돼 있었다. 피하거나 숨기기에 바쁜 한국과는 사뭇 다른 태도였다. 그런데 홍콩과 중국을 다녀온 많은 사람이 이 지역의 이해하지 못할 음식문화의 하나로 MSG에 거부감이 없다는 점을 꼽았다. 심지어 대중식당에는 음식을 찍어먹으라고 양념처럼 종지에 담겨 제공되는 점을 신기해한다. 왜 똑같은 물질이 국경을 넘으면 이렇게 다른 얼굴을 하고 있을까.

 한국은 여전히 이 물질에 대해 온당한 토론을 벌이지 못하고 있다. 당장 언론사에서 유명 호텔과 식당에 사용 여부를 묻는 질의서를 보내보시라. 즉각 속시원한 답변을 보낼 곳이 별로 없을 것이다.

 MSG가 유해한 물질이 아니라는 건 많은 자연과학자에 의해 옹호되고 있다. 염려와 경원과는 달리 아직까지는 인체에 나쁜 어떤 분명한 결과도 얻지 못했다. 흔히 두통과 메스꺼움, 졸음을 유발한다는 중국음식증후군도 과학적 근거를 갖지 못 했다는 게 그들의 설명이다. 과학자가 이렇게 아니라고 해도 대다수 국민은 뭔가 꺼림칙한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우습게도 이 조미료의 사용량이 매년 늘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알게 모르게 더 많은 양을 먹으면서 비난과 회피는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만약 이 물질이 유해하다면 사용량이 늘도록 방치(?)하고 있는 보건당국은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진실은 많은 이가 알든 모르든 진실이다. 나는 진실의 편에 서고 싶다.

박찬일 음식 칼럼니스트 chanilpar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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